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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의 강국 고구려

고구려는 도읍을 세 번 옮겼습니다. 졸본에서 압록강 가의 국내성으로, 427년에 평양으로, 586년에 평양 안의 장안성으로 옮겼습니다.

삼국 시대는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한반도와 그 북쪽의 넓은 땅을 나누어 차지하던 몇 세기를 가리킵니다. 네 번째 세력인 가야도 오랫동안 남쪽 바닷가에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시대는 660년대에서 670년대 사이에 끝납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차례로 무너지고,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 밖으로 몰아낸 때입니다. 이 과정은 그 나라들의 이야기를 여덟 단원으로 나누어 차례로 따라갑니다. 첫 단원은 세 나라 가운데 가장 넓은 땅을 다스린 고구려입니다.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

배경고구려의 건국 이야기는 고려 때 편찬된 역사책 『삼국사기』에 전합니다.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는 부여의 금와왕에게 거두어져 그 궁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유화가 가는 곳마다 햇빛이 따라와 그를 비추었고, 얼마 뒤 유화는 알을 하나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알을 깨고 나온 사내아이가 바로 주몽입니다. 주몽이라는 이름은 활을 잘 쏘는 솜씨와 이어져 있습니다. 부여의 왕자들이 주몽을 시기하자, 주몽은 몇몇 동료와 함께 남쪽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37년 졸본천 가에 도읍을 정했습니다. 그는 뒤에 동명성왕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읽습니다.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부여의 건국 설화에서 빌려 온 것이어서, 있는 그대로의 기록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은 더 그럴듯한 그림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압록강 중상류를 따라 살던 주민 집단과, 부여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서로 섞였습니다. 그리고 강과 골짜기마다 있던 「나」라는 작은 집단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 합치거나 정복되며 하나로 묶였다는 것입니다. 1세기 후반에 이르면 이 집단들은 다섯 개의 단위, 5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계루부가 왕을 냈습니다.

세 번 바뀐 도읍

고구려의 도읍은 보통 성 하나가 아니라 두 성이 짝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는 평지에 쌓은 성으로, 평소에 왕이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 가까이의 산 위에 쌓은 성으로, 전쟁이 나면 들어가 지키는 곳이었습니다. 고구려의 첫 도읍 졸본은 지금의 중국 요녕성 환인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그곳에 있는 오녀산성은 높이 약 820미터의 봉우리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방향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도읍은 서기 3년에 국내성으로 옮겨졌습니다. 국내성은 압록강 가에 있으며, 지금의 중국 집안 지역입니다. 다만 중국 역사서에 그 무렵 새 도읍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서, 도읍을 옮긴 시기를 209년 무렵으로 늦춰 보는 역사학자도 있습니다. 국내성은 돌로 쌓은 네모난 성이었고, 두 물줄기가 성을 감싸 자연스러운 해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 뒤쪽 산에는 짝이 되는 환도성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짝을 이룬 두 성이 언제나 도읍을 지켜 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342년에는 전연이라는 나라의 군대에 도읍이 함락되기도 했습니다.

그 뒤 427년에 장수왕은 도읍을 다시 한번 남쪽의 평양으로 옮겼습니다. 새 도읍 평양은 들판이 넓고 농사가 잘되어 곡식이 많이 나는 곳이었고, 고조선 때부터 이 지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예전 교과서는 이 천도를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려는 정책으로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연구는 경제적인 이유, 그리고 힘센 귀족 가문을 누르려는 뜻도 함께 봅니다. 586년에는 평양 안에서 다시 한번 장안성으로 궁을 옮겼습니다. 장안성은 성벽으로 둘러싼 큰 도성으로, 바깥 성벽의 길이만 약 16킬로미터에 이르렀습니다.

위기를 넘어 전성기로

4세기는 고구려에게 아주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342년에 도읍이 함락된 데 이어, 371년에는 고국원왕이 평양에서 백제의 공격을 막다가 전사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소수림왕은 나라를 고치는 개혁으로 이 위기에 답했습니다. 372년에는 불교를 공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373년에는 율령을 반포해, 귀족 회의에서 내리는 결정보다 왕의 이름으로 글로 써 둔 법이 앞서게 했습니다. 이런 변화가 바탕이 되어, 4세기 말에서 5세기에 걸쳐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영토를 크게 넓힐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6단원에서 다룹니다.

5세기 무렵 네 세력을 나타낸 단순화 지도: 1 고구려, 2 백제, 3 신라, 4 가야. 원은 중심지만 나타내며 실제 경계는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고구려의 도읍: A 졸본(환인), B 국내성(집안), C 평양. 해안선은 오늘날 기준입니다.
  • 37 BCE: 주몽이 졸본에서 고구려를 세웁니다(『삼국사기』 연대).
  • 3 CE: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깁니다(『삼국사기』 연대).
  • 342: 전연이 도읍을 함락합니다.
  • 371: 고국원왕이 평양에서 전사합니다.
  • 372: 불교를 공인합니다.
  • 373: 율령을 반포합니다.
  • 427: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합니다.
  • 586: 평양 안의 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깁니다.
주몽건국 설화의 시조, 뒤에 동명성왕
졸본첫 도읍, 지금의 환인
국내성압록강 가의 두 번째 도읍, 지금의 집안
5부건국을 이끈 다섯 집단, 계루부에서 왕이 나옴
427년장수왕의 평양 천도
율령왕의 이름으로 반포한 법과 제도
핵심 정리
  •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 지역에서 시작했으며, 『삼국사기』는 기원전 37년으로 적습니다.
  • 주몽 이야기는 부여 설화를 빌린 것이어서 기록이 아니라 설화로 읽습니다.
  • 도읍은 졸본, 국내성, 그리고 427년부터 평양이었습니다.
  • 342년과 371년의 위기 뒤에 소수림왕의 개혁(372년 불교, 373년 율령)이 이어졌습니다.
  1.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는 기원전 몇 년에 세워졌나요? 숫자만 쓰세요.
  2. 국내성 옆을 흐르는 강은?
    • 압록강
    • 한강
    • 금강
    • 낙동강
  3. 장수왕이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해는?
  4. 역사학자들이 주몽 이야기를 그대로 사실로 보지 않는 까닭은?
    • 상당 부분이 부여 건국 설화를 빌린 것이어서
    • 20세기에 쓰인 이야기여서
    • 전하는 기록이 하나도 없어서
    • 광개토대왕릉비와 완전히 달라서
  5. 고구려의 왕을 낸 집단은?
    • 계루부
    • 말갈
    • 가야 연맹
    • 6촌
  6. 고구려 도성의 기본 짜임은?
    • 평지 성과 산성의 짝
    • 섬 하나에 세운 요새
    • 성벽 없는 여러 마을
    • 절 안에 지은 궁궐
  7. 고국원왕은 371년에 전사했고 율령은 373년에 반포되었습니다. 몇 년 차이인가요?
  8. 342년 고구려 도읍을 함락한 나라는?
    • 전연
    • 신라
    • 당
    • 왜
  9. 고구려 도읍을 이른 것부터 놓으세요.
이 과정의 출처 (9)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고대 (고구려 건국, 고구려의 천도, 율령 반포, 광개토대왕릉비, 고구려·수 전쟁, 살수대첩, 고구려·당 전쟁, 고구려 부흥운동, 관산성전투, 백제 건국, 신라 건국, 박혁거세, 김수로왕, 포상팔국의 난, 대가야 멸망, 거칠부, 발해 건국, 발해의 천도, 발해 멸망)
  • 신편 한국사 6권 (웅진천도와 정정의 불안, 웅진시대)
  • 교과서 속 우리역사 (삼국의 불교 수용, 백제와 일본의 교류, 발해의 발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이차돈, 법흥왕, 나당전쟁, 황산벌전투, 수로왕
  • 국립중앙박물관 (museum.go.kr): 사유의 방, 금동 반가사유상 (덕수3312)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unesco.or.kr):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2023)
  • Founding dates before about 300 CE follow the Samguk sagi and Samguk yusa as reported by these sources
  • historians debate them. Map coastlines: Natural Earth 1:110m (public domain)
  • circles mark core areas only, not borders.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