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도읍의 나라 백제
475년 한성이 무너지자, 백제는 한 달 남짓 만에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백제는 서울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 위를 걸으면서도 모르고 지나치는 나라입니다. 백제의 첫 왕성은 지금의 서울 송파구, 한강 가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흙 성벽은 지금도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백제는 7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도읍을 세 곳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백제가 도읍을 옮길 때마다, 그때 나라가 어떤 압박을 받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북쪽에서 온 건국 세력
국사편찬위원회는 백제를 서로 다른 두 집단이 결합해서 세운 나라로 설명합니다. 한 집단은 부여에서 고구려를 거쳐 남쪽으로 내려온 이주민입니다. 다른 한 집단은 그보다 일찍부터 한강 하류에 자리 잡고 살던 마한의 작은 나라 백제(伯濟)입니다. 백제가 북쪽 사람들과 이어져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단서도 여럿 남아 있습니다. 도읍 주변에 있는 초기 왕실 무덤은 고구려의 무덤처럼 돌을 계단 모양으로 쌓아 올린 돌무지무덤입니다. 그리고 538년에는 나라 이름을 「남쪽의 부여」라는 뜻의 남부여로 바꾸기까지 했습니다.
한성 시대
4세기에 이르러 백제는 한반도 서해안의 강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371년 근초고왕 때 백제군은 고구려의 평양을 공격했고, 그 싸움에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전사했습니다. 백제는 바다 건너 중국 남쪽에 있던 동진의 조정과도 교역하고 사신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384년에는 불교를 공식으로 맞아들였습니다. 한강 가에 있던 도읍 한성은 약 5세기 동안 이렇게 커진 백제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다 두 나라 사이의 형세가 뒤집혔습니다. 475년 9월, 고구려의 장수왕이 3만 군사를 이끌고 와서 한성을 에워쌌습니다. 결국 한성은 고구려군에 함락되었고 백제의 개로왕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때 개로왕의 동생 문주는 이웃 신라에 도움을 청하러 가 있었습니다. 문주는 신라에서 원병 1만 명을 얻어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습니다.
웅진과 사비
살아남은 문주는 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고, 475년 10월 도읍을 남쪽의 웅진, 지금의 공주로 옮겼습니다. 웅진은 둘레의 산과 강이 만들어 준 천연 요새였습니다. 북쪽으로는 차령산맥과 금강이, 동쪽으로는 계룡산이 막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금강을 따라 내려가면 서해로 나갈 수 있는 길도 있었습니다. 웅진 시대는 475년부터 538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웅진 시대의 처음 몇 해는 왕이 잇달아 살해될 만큼 나라가 혼란했습니다. 하지만 무령왕이 나라를 안정시켰고, 중국 남조의 양나라와 가깝게 지냈습니다. 무령왕의 무덤인 무령왕릉은 중국식 벽돌무덤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백제 유적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538년 성왕은 도읍을 다시 옮겼는데, 이번에는 미리 계획을 세워서 옮겼습니다. 새 도읍은 넓은 들판 위에 자리한 사비로, 지금의 부여 땅입니다. 551년 백제와 신라는 힘을 합쳐 고구려를 공격하고 한강 유역을 되찾았습니다. 이때 백제는 한강 하류의 6개 지역을, 신라는 상류의 10개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겨우 2년 뒤, 함께 싸웠던 신라가 갑자기 백제가 차지한 하류 지역까지 빼앗았습니다. 성왕은 554년에 가야와 왜의 도움을 받아 관산성, 지금의 옥천을 공격하며 반격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매복에 걸려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패배로 한강 유역의 주인이 완전히 정해졌습니다.
- 18 BCE: 온조가 위례성에서 백제를 세웁니다(『삼국사기』 연대).
- 371: 근초고왕이 평양을 공격합니다.
- 384: 불교를 공식으로 받아들입니다.
- 475: 한성이 함락되고 웅진으로 천도합니다.
- 538: 성왕이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합니다.
- 551: 백제와 신라가 한강 유역을 되찾습니다.
- 554: 성왕이 관산성에서 전사합니다.
- 660: 백제가 멸망합니다(7단원).
| 온조 | 『삼국사기』의 시조, 위례성에 도읍 |
| 근초고왕 | 371년 평양을 공격한 4세기의 왕 |
| 웅진 | 두 번째 도읍, 지금의 공주(475~538) |
| 사비 | 세 번째 도읍, 지금의 부여(538년부터) |
| 남부여 | 538년 성왕이 쓴 국호 |
| 관산성 | 554년 성왕이 전사한 싸움 |
- 백제는 북쪽 이주민과 한강 하류의 마한 소국이 합쳐 세운 나라입니다.
- 한성(서울)은 475년 고구려에 함락될 때까지 도읍이었습니다.
- 475~538년에는 웅진(공주), 538년부터는 사비(부여)가 도읍이었습니다.
- 553년 신라의 한강 하류 점령과 554년의 패배로 두 나라의 동맹이 끝났습니다.
- 한성이 고구려에 함락된 해는?
- 웅진은 지금의 어느 도시인가요?
- 공주
- 부여
- 김해
- 경주
- 웅진 시대는 475년부터 538년까지입니다. 몇 년인가요?
- 사비로 도읍을 옮긴 왕은?
- 성왕
- 문주왕
- 근초고왕
- 의자왕
- 371년에 있었던 일은?
- 백제의 평양 공격으로 고국원왕이 전사했다
- 백제가 신라에 멸망했다
- 신라에 불교가 들어왔다
-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했다
- 백제 왕실이 북쪽과 이어져 있음을 보여 주는 단서는?
- 고구려와 비슷한 돌무지무덤
- 신라와 같은 금관
- 가야의 철제 갑옷
- 당나라식 동전
- 551년 한강 유역은 어떻게 나뉘었나요?
- 백제는 하류, 신라는 상류
- 신라는 하류, 백제는 상류
- 고구려가 모두 지켰다
- 가야가 하류를 차지했다
- 553년 신라가 한강 하류를 빼앗았고, 이듬해 성왕이 관산성에서 전사했습니다. 몇 년인가요?
- 백제의 사건을 순서대로 놓으세요.
이 과정의 출처 (9)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고대 (고구려 건국, 고구려의 천도, 율령 반포, 광개토대왕릉비, 고구려·수 전쟁, 살수대첩, 고구려·당 전쟁, 고구려 부흥운동, 관산성전투, 백제 건국, 신라 건국, 박혁거세, 김수로왕, 포상팔국의 난, 대가야 멸망, 거칠부, 발해 건국, 발해의 천도, 발해 멸망)
- 신편 한국사 6권 (웅진천도와 정정의 불안, 웅진시대)
- 교과서 속 우리역사 (삼국의 불교 수용, 백제와 일본의 교류, 발해의 발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이차돈, 법흥왕, 나당전쟁, 황산벌전투, 수로왕
- 국립중앙박물관 (museum.go.kr): 사유의 방, 금동 반가사유상 (덕수3312)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unesco.or.kr):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2023)
- Founding dates before about 300 CE follow the Samguk sagi and Samguk yusa as reported by these sources
- historians debate them. Map coastlines: Natural Earth 1:110m (public domain)
- circles mark core areas only, not borders.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