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마을에서 왕국으로, 신라
신라의 임금은 처음부터 「왕」이라는 칭호를 쓰지 않았습니다. 네 가지 다른 칭호를 거쳐 22대 지증왕 때에야 왕이라 불렀습니다.
신라는 한반도의 남동쪽 맨 끝, 지금의 경주 일대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신라는 세 나라 가운데 가장 작은 나라였고, 중앙 정부를 세우고 중앙 집권 체제를 갖추는 속도도 가장 늦었습니다. 글로 된 법인 율령과 불교를 받아들인 것도 고구려와 백제보다 100년 넘게 뒤였습니다. 그런데도 세 나라 가운데 마지막까지 서 있던 나라는 신라였습니다. 이 단원에서는 여러 마을의 연합이 어떻게 강한 왕을 둔 하나의 나라로 바뀌어 갔는지 봅니다.
우물가의 알
같은 이야기가 『삼국유사』에도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이와 조금 다릅니다. 여섯 촌장이 한자리에 모여 나라를 세울 일을 의논하다가, 함께 그 알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두 이야기는 역사학자들이 실제로 중요하게 보는 한 가지 점에서는 서로 같습니다. 뒤에 6부가 되는 여섯 마을이 나라를 만들었고, 그 뒤로도 몇 세기 동안 나라 안에서 큰 발언권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임금을 부르는 다섯 이름
신라의 임금을 부르는 칭호는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거서간이라 불렸습니다. 이어서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으로 칭호가 바뀌었습니다. 「왕」이라는 칭호는 22대 임금인 지증왕 때에야 처음 썼습니다. 이렇게 칭호가 바뀐 흐름을 차례로 보면 임금 자리의 성격이 어떻게 커 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마을 촌장들과 힘을 나누던 우두머리였는데, 차츰 그들 위에 홀로 선 군주가 된 것입니다.
법흥왕이 나라의 틀을 세우다
514년부터 540년까지 신라를 다스린 법흥왕은 신라를 중앙 집권 국가로 바꾸는 데 가장 큰 일을 했습니다. 먼저 517년에는 나라의 군사를 맡는 관청인 병부를 두어, 군대를 왕이 직접 거느리게 했습니다. 이어서 520년에는 글로 된 법인 율령을 반포하고, 관리들이 입는 공복의 색을 정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율령에 17관등과 골품제에 관한 규정이 들어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골품제는 집안마다 태어난 신분에 따라, 그 집안 사람이 오를 수 있는 벼슬의 끝을 정해 둔 제도입니다. 법흥왕은 또 상대등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귀족 회의를 이끌게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연호를 빌리지 않고, 신라 최초로 신라만의 독자적인 연호를 썼습니다. 527년(『삼국사기』는 528년)에는 이차돈의 죽음을 계기로 불교를 공인했는데, 이 이야기는 5단원에서 다룹니다. 그리고 532년에는 가야의 한 나라인 금관가야가 법흥왕에게 항복했습니다.
진흥왕, 한강에 이르다
법흥왕의 뒤를 이은 진흥왕은 이렇게 새로 다져진 나라의 힘으로 영토를 넓혔습니다. 545년에는 신라의 관리 거칠부가 나라의 역사책 『국사』를 편찬했습니다. 551년에는 신라와 백제가 힘을 합쳐 고구려를 한강 유역에서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553년 신라는 백제의 몫까지 빼앗아 그곳에 신주라는 새 행정 구역을 설치했습니다. 554년 관산성 싸움에서 이긴 뒤 신라는 한강 유역을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신라는 서해로 나가는 항구와, 중국으로 곧장 가는 바닷길을 얻었습니다. 562년에는 장군 이사부가 마지막으로 남은 강한 가야 세력인 대가야를 무너뜨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신라는 7세기에 벌어질 큰 전쟁들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 57 BCE: 혁거세가 임금이 됩니다(『삼국사기』 연대).
- 517: 병부를 설치합니다.
- 520: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하고 공복을 정합니다.
- 527: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를 공인합니다.
- 532: 금관가야가 항복합니다.
- 553: 신라가 한강 하류를 차지하고 신주를 둡니다.
- 562: 이사부가 대가야를 무너뜨립니다.
| 혁거세 | 나정 옆의 알에서 태어난 시조 |
| 6촌 | 첫 임금을 세운 마을들, 뒤의 6부 |
| 마립간 | 왕 칭호 이전의 임금 칭호 |
| 법흥왕 | 520년 율령, 527년 불교 공인, 532년 금관가야 병합 |
| 골품제 | 오를 수 있는 벼슬을 태생으로 정한 신분 제도 |
| 진흥왕 | 한강 유역과 대가야를 차지한 왕 |
- 신라는 경주 둘레의 여섯 마을에서 자라났으며, 건국 연도는 기원전 57년으로 전합니다.
- 임금은 네 가지 다른 칭호를 거친 뒤 지증왕 때 「왕」이 되었습니다.
- 법흥왕이 520년 율령, 527년 불교 공인으로 나라의 틀을 세웠습니다.
- 진흥왕은 한강 유역(553~554)과 대가야(562)를 차지했습니다.
-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는 기원전 몇 년에 세워졌나요? 숫자만 쓰세요.
- 혁거세의 알이 발견된 곳은?
- 나정 우물 옆
- 구지봉
- 압록강 가
- 부여의 궁궐
- 신라가 처음 「왕」 칭호를 쓴 임금은?
- 지증왕
- 혁거세
- 진흥왕
- 문무왕
- 신라 임금의 칭호를 순서대로 놓으세요.
-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한 해는?
- 골품제가 정한 것은?
- 태어난 신분에 따라 오를 수 있는 벼슬의 끝
- 어느 마을이 세금을 가장 많이 낼지
- 누가 승려가 될 수 있는지
- 도읍을 어디에 둘지
- 고구려는 373년, 신라는 520년에 율령을 반포했습니다. 신라는 몇 년 늦었나요?
- 한강 유역이 신라에게 중요했던 까닭은?
- 서해로 나가는 항구와 중국 가는 바닷길
- 신라 왕릉이 있는 곳이어서
- 쌀을 기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어서
- 불교가 시작된 곳이어서
- 562년 대가야를 무너뜨린 장군은?
- 이사부
- 계백
- 을지문덕
- 거칠부
이 과정의 출처 (9)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고대 (고구려 건국, 고구려의 천도, 율령 반포, 광개토대왕릉비, 고구려·수 전쟁, 살수대첩, 고구려·당 전쟁, 고구려 부흥운동, 관산성전투, 백제 건국, 신라 건국, 박혁거세, 김수로왕, 포상팔국의 난, 대가야 멸망, 거칠부, 발해 건국, 발해의 천도, 발해 멸망)
- 신편 한국사 6권 (웅진천도와 정정의 불안, 웅진시대)
- 교과서 속 우리역사 (삼국의 불교 수용, 백제와 일본의 교류, 발해의 발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이차돈, 법흥왕, 나당전쟁, 황산벌전투, 수로왕
- 국립중앙박물관 (museum.go.kr): 사유의 방, 금동 반가사유상 (덕수3312)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unesco.or.kr):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2023)
- Founding dates before about 300 CE follow the Samguk sagi and Samguk yusa as reported by these sources
- historians debate them. Map coastlines: Natural Earth 1:110m (public domain)
- circles mark core areas only, not borders.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