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과 고려의 건국
936년 고려가 후백제를 치러 나설 때 기록에 남은 군사는 8만 7,500명이었고, 후백제를 세운 견훤도 고려군 편에 서 있었습니다.
고려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년 동안 한반도를 다스렸습니다. 영어에서 한국을 부르는 이름인 코리아(Korea)도 바로 이 고려라는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고려는 고려청자와 팔만대장경,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을 우리에게 남긴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은 고려의 역사를 일곱 단원으로 나누어 차례로 따라갑니다. 출발점은 여러 조각으로 갈라진 나라입니다. 고려가 생겨나기 직전, 한반도는 하나의 나라로 묶여 있지 않았습니다. 9세기 말이 되자 신라 중앙 정부는 지방을 다스릴 힘을 잃었고, 각 지방의 세력가들이 저마다 자기 군사를 거느리고 제 고장을 직접 다스렸습니다.
끌어서 돌리고, 휠이나 두 손가락으로 확대하세요.
다시 셋으로 나뉜 나라
892년 무진주에서 스스로 일어선 견훤은 900년 서남쪽에서 후백제를 선포했고, 901년에는 궁예가 중부와 북부에 후고구려를 세웠습니다. 이 두 나라에 아직 남아 있던 신라를 더해 후삼국이라 부릅니다. 궁예의 나라는 빠르게 커졌지만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918년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새 나라를 세웠습니다. 왕건은 자기 나라의 이름을 고려라 했습니다. 고려는 고구려를 줄인 이름으로, 옛 북쪽 왕국 고구려를 조상으로 삼아 그 뒤를 잇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919년에는 송악현(지금의 개성)과 개성현 일부를 하나로 합쳐 이름을 새로 붙이고, 이곳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이 도시가 바로 개경입니다. 개경은 강화도로 옮겨 가 전쟁을 치른 시기를 빼고는 왕조가 끝날 때까지 내내 고려의 도읍이었습니다.
연합으로 얻고, 싸움으로 마무리하다
왕건이 가장 먼저 꺼내 든 무기는 연합이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왕건이 전쟁 내내 꾸준히 이어 간 정책 두 가지를 듭니다. 하나는 지방 세력가인 호족과 손을 잡는 호족 연합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신라와 사이좋게 지내며 신라를 존중하는 친신라 정책입니다. 왕건은 지방의 여러 집안에 공을 들여 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안았고, 신라에 대해서는 늘 존중하는 태도로 정중하게 예우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는 오히려 신라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 친선 정책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습니다. 935년 신라의 마지막 왕이 싸움 한 번 없이 자기 나라를 고려에 넘겨준 것입니다.
936년의 통일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바뀐 것 이상의 일이었습니다. 신라에서는 수도에 사는 소수의 진골 귀족이 권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이와 달리 고려의 지배층이 신라보다 훨씬 넓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이제는 전국 각지의 지방 집안들도 나라 일에 참여하며 권력을 함께 나누어 가졌습니다. 고려는 926년 거란에 멸망한 북쪽 왕국 발해의 유민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고려의 백성은 북쪽에서 온 사람과 남쪽에서 온 사람이 함께 어울려 이루게 되었습니다. 고려는 처음부터 여러 지역 사람이 함께 만든 나라였던 셈입니다.
- 900: 견훤, 후백제 건국
- 901: 궁예, 후고구려 건국
- 918: 왕건, 고려 건국
- 919: 개경 천도
- 926: 거란, 발해 멸망
- 935: 신라 항복
- 936: 후백제 멸망, 통일
| 왕건 | 918년 고려를 세운 태조 |
| 견훤 | 900년 후백제를 세운 인물 |
| 궁예 | 901년 후고구려를 세운 인물 |
| 개경 | 919년부터의 도읍, 지금의 개성 |
| 호족 | 군사를 거느린 지방 세력가 |
| 개태사 | 936년 통일을 기념한 논산의 절 |
- 약해진 신라에서 후백제(900)와 후고구려(901)가 갈라져 나왔습니다.
- 왕건은 918년 고려를 세우고 919년 개경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 호족 연합과 친신라 정책으로 935년 신라의 항복을 받았습니다.
- 936년 후백제를 무너뜨렸고 발해 유민까지 받아들였습니다.
- 왕건이 고려를 세운 해는?
- 후백제를 세운 사람은?
- 견훤
- 궁예
- 왕건
- 신검
- 왕건이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한 까닭은?
- 고구려를 잇는다는 뜻에서
- 집안의 성이어서
- 남쪽 땅이라는 뜻이어서
- 신라가 요청해서
- 고려의 도읍은?
- 개경(개성)
- 경주
- 평양
- 한양
- 차례로 놓으세요.
- 왕건이 신라에 대해 쓴 정책은?
- 우호와 예우
- 끊임없는 공격
- 교역 금지
- 무시
- 후백제가 무너지기 전 안에서 일어난 일은?
- 신검이 아버지 견훤을 몰아냈다
- 견훤이 승려가 되었다
- 신라가 도읍을 빼앗았다
- 거란이 침입했다
- 936년 고려군의 수는 기록상 몇 명인가요?
- 고려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 이어졌습니다. 몇 년인가요?
- 926년 뒤 고려가 받아들인 유민은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요?
- 발해
- 당
- 일본
- 거란
이 과정의 출처 (11)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고려 「후삼국의 통일」「노비안검법」「광종」「최승로」「최승로 시무28조(고려사)」「귀주대첩」「천리장성 수축」「윤관의 9성 설치」「여진족이 건국한 금의 팽창」「거란(요)의 건국과 발전」「발해 멸망」「이자겸의 난」「무신정변」「교정도감」「만적의 난」「몽골의 고려침입」「처인성 전투」「김윤후」「삼별초」「쌍성총관부」「공민왕」「직지심체요절」「진포대첩」「요동 정벌」「위화도회군」「삼국사기」「명 태조 주원장」, 교과서 용어 해설 「강동 6주」「천리장성」「송상」「위화도 회군」, 고등학교 국사 7차 「거란의 침입과 격퇴」「이자겸의 난과 서경 천도 운동」「무신 정권의 성립」, 재미있는 초등역사 「서희」「고려청자」, 신편 한국사 15권 「금과의 통교」 17권 「≪삼국사기≫의 편찬」, 한국문화사 「상감청자의 제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개경, 후삼국 통일, 서희, 시무28조, 천리장성, 묘청의 난, 만적의 난, 삼별초항쟁, 기철,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 국립중앙박물관 (museum.go.kr)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청자 상감동채 모란무늬 매병」
-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unescoicdh.org)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 국가기록원 「직지와 흥덕사지」 (theme.archives.go.kr)
- 금성출판사 티칭백과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문화재청 2015년 8월 경판 수 81,352장 발표 인용)
- Where sources disagree: Battle of Gwiju 1019 (우리역사넷, 7차 교과서) vs 1018 (3차 초등 교과서, the year the invasion began)
- completion of the Cheolli Jangseong 1044 (우리역사넷) vs 104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Tripitaka Koreana 81,258 blocks (colonial-era count, includes Joseon recarvings) vs 81,352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recount, 2015)
- inlaid celadon from the mid-12th century (우리역사넷 초등역사) vs common only from the late 12th century (한국문화사)
- start of Yuan interference 1259 or 1270.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