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918년 왕건의 건국부터 1392년 멸망까지 고려 474년을 일곱 단원으로 나누었습니다. 후삼국 통일, 나라의 틀, 거란·여진과의 전쟁, 무신 정권, 몽골과의 전쟁, 청자와 인쇄, 그리고 멸망을 차례로 다룹니다. 3D 연표에 고려의 시기를 거란(요), 송, 몽골, 명과 나란히 놓았습니다. 연대는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을 따르고, 출처마다 다른 연대는 단원에서 따로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 대하여
후백제는 안에서 무너졌습니다. 견훤의 아들 신검이 권력을 잡아 아버지를 금산사에 가두었고, 늙은 왕은 탈출해 왕건에게 갔습니다. 936년 9월 왕건은 기록상 8만 7,5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지금의 구미인 일선으로 갔습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후백제 장수 네 명이 고려 진영의 견훤에게 말을 타고 와 항복했습니다. 이렇게 918년 왕건의 건국에서 1392년 멸망까지 474년의 고려가 하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일곱 단원은 왕조를 따라갑니다. 건국 다음에 광종과 성종의 시대가 오고, 958년의 첫 과거에서는 일곱 명만 합격했습니다. 거란, 여진과의 전쟁에는 993년 서희가 한 번의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은 일이 있고, 1019년 귀주에서는 거란군이 수천 명만 살아 돌아갔습니다. 이어지는 무신 정권에는 최씨 집안의 노비 만적이 1198년 개경에서 노비 해방을 위한 봉기를 꾀한 일이 있습니다. 몽골과의 30년 전쟁에는 승려 김윤후가 1232년 처인성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를 쏜 일이 있습니다. 청자, 팔만대장경, 금속 활자 단원은 『직지』가 1377년에 인쇄되어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섰다고 알려 줍니다. 마지막 단원은 원 간섭과 왕조의 끝입니다. 3D 연표는 고려의 시기를 요, 송, 몽골, 명나라와 나란히 놓습니다.
1388년 이성계는 요동을 치러 간 두 지휘관 중 하나였습니다.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그는 회군을 청했으나 거절당했고, 5월에 그래도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진군해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고려는 후삼국에서 자라났으므로 삼국 시대, 특히 신라와 발해를 다루는 마지막 단원이 배경이 됩니다. 연도를 묻는 문제가 많으니 918년부터 1392년까지 간단한 연표를 만들며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마치고 나면
왕건이 936년에 후삼국을 통일한 과정, 광종의 과거제와 노비안검법이 바꾼 것, 서희가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은 방법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무신 정권과 만적의 봉기 계획, 몽골과의 30년 전쟁, 고려청자와 팔만대장경, 직지의 제작, 1392년 고려가 끝난 이유도 말할 수 있습니다.
- 1왕건과 고려의 건국936년 고려가 후백제를 치러 나설 때 기록에 남은 군사는 8만 7,500명이었고, 후백제를 세운 견훤도 고려군 편에 서 있었습니다.
- 2광종과 성종, 나라의 틀을 세우다958년 고려의 첫 과거 시험에서 합격한 사람은 7명뿐이었습니다.
- 3거란과 여진, 북방과의 전쟁993년 서희는 담판 한 번으로 강동 6주를 얻었고, 1019년 귀주에서 살아 돌아간 거란군은 수천에 불과했습니다.
- 4문벌 귀족과 무신 정권1198년 최충헌의 집 노비 만적은 개경의 노비들과 함께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봉기를 꾀했습니다.
- 5몽골과의 30년 전쟁1232년 지금의 용인에 있던 흙성 처인성에서 승려 김윤후의 화살에 몽골 장수 살리타가 쓰러졌고, 몽골군은 물러갔습니다.
- 6고려청자, 팔만대장경, 금속 활자『직지』는 1377년 금속 활자로 찍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섭니다.
- 7원 간섭기, 공민왕, 고려의 멸망1388년 요동을 치러 간 이성계는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렸고, 4년 뒤 왕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의 출처 (11)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고려 「후삼국의 통일」「노비안검법」「광종」「최승로」「최승로 시무28조(고려사)」「귀주대첩」「천리장성 수축」「윤관의 9성 설치」「여진족이 건국한 금의 팽창」「거란(요)의 건국과 발전」「발해 멸망」「이자겸의 난」「무신정변」「교정도감」「만적의 난」「몽골의 고려침입」「처인성 전투」「김윤후」「삼별초」「쌍성총관부」「공민왕」「직지심체요절」「진포대첩」「요동 정벌」「위화도회군」「삼국사기」「명 태조 주원장」, 교과서 용어 해설 「강동 6주」「천리장성」「송상」「위화도 회군」, 고등학교 국사 7차 「거란의 침입과 격퇴」「이자겸의 난과 서경 천도 운동」「무신 정권의 성립」, 재미있는 초등역사 「서희」「고려청자」, 신편 한국사 15권 「금과의 통교」 17권 「≪삼국사기≫의 편찬」, 한국문화사 「상감청자의 제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개경, 후삼국 통일, 서희, 시무28조, 천리장성, 묘청의 난, 만적의 난, 삼별초항쟁, 기철,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 국립중앙박물관 (museum.go.kr)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청자 상감동채 모란무늬 매병」
-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unescoicdh.org)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 국가기록원 「직지와 흥덕사지」 (theme.archives.go.kr)
- 금성출판사 티칭백과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문화재청 2015년 8월 경판 수 81,352장 발표 인용)
- Where sources disagree: Battle of Gwiju 1019 (우리역사넷, 7차 교과서) vs 1018 (3차 초등 교과서, the year the invasion began)
- completion of the Cheolli Jangseong 1044 (우리역사넷) vs 104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Tripitaka Koreana 81,258 blocks (colonial-era count, includes Joseon recarvings) vs 81,352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recount, 2015)
- inlaid celadon from the mid-12th century (우리역사넷 초등역사) vs common only from the late 12th century (한국문화사)
- start of Yuan interference 1259 or 1270.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