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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간섭기, 공민왕, 고려의 멸망

1388년 요동을 치러 간 이성계는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렸고, 4년 뒤 왕이 되었습니다.

1270년 이후에도 고려는 자기 왕과 법, 그리고 나라 이름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고려는 1271년 쿠빌라이 칸이 세운 왕조인 원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고려의 왕들은 원의 공주와 혼인했는데, 그 첫 번째가 쿠빌라이의 딸을 아내로 맞은 충렬왕입니다. 고려 땅 안에 둔 몽골의 기구들이 고려 조정을 감시했고, 몇몇 변경 지역은 몽골이 직접 다스렸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동북쪽의 쌍성총관부입니다. 쌍성총관부는 1258년 고려 사람 조휘와 탁청 두 사람이 자기들이 다스리던 땅을 들고 몽골에 투항하면서 생겼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수십 년을 원 간섭기라 부릅니다. 원이 고려의 나랏일에 끼어들던 시기라는 뜻입니다. 그 시작을 1259년 강화 때부터로 보는 사람도 있고, 1270년 개경 환도 때부터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보든 고려가 원의 영향을 크게 받은 시기였다는 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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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간섭기 띠(1270~1356)와 1392년까지의 짧은 마지막 띠입니다. 세계 줄에서는 1368년 원이 명에게 자리를 내줍니다.

공민왕, 원에서 벗어나다

1350년대에 이르러 원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고려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날 기회가 온 것입니다. 공민왕은 자신도 원의 공주와 혼인한 왕이었지만, 원이 고려를 쥐고 흔드는 데 맞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356년 5월 공민왕은 기철과 그 일파를 숙청했습니다. 기철 일파는 원 조정의 기황후와 몽골을 등에 업고 권세를 누리던 세력이었습니다. 공민왕은 이어서 원이 고려 내정에 간섭하는 통로였던 정동행성 이문소도 없앴습니다. 그다음 공민왕은 북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1356년 7월 고려군은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되찾았고, 이로써 거의 100년 가까이 이어진 그 땅의 몽골 지배가 끝났습니다. 이때 그 지역의 지휘관이던 이자춘이 고려군의 공격을 도왔고, 그 뒤 고려 조정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자춘의 아들이 바로 이성계입니다. 뒷날 조선을 세우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홍건적과 왜구, 새로운 무기

공민왕의 말년과 그 뒤의 시기는 어지러웠습니다. 중국에서 일어난 반란군인 홍건적이 고려에 쳐들어왔습니다. 일본 해적인 왜구는 1223년부터 가끔씩 나타나 약탈하던 무리였는데, 1350년 이후에는 끊이지 않는 위협이 되어 내륙 깊숙한 곳까지 쳐들어왔습니다. 최무선은 화약만이 왜구를 막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에게서 화약 만드는 법을 배워 익혔고, 1377년 조정은 화약 무기를 만드는 관청인 화통도감을 세웠습니다. 화약과 화포를 나라에서 직접 만들게 된 것입니다. 1380년 진포에서 고려의 배들은 처음으로 바다 싸움에서 화포를 썼고, 왜구의 큰 선단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위화도 회군과 고려의 끝

배경1368년 주원장이 명을 세우고 원을 중국 밖으로 몰아냈습니다. 얼마 뒤 명은 철령에 철령위라는 군사 기지를 두고, 그 북쪽 땅을 차지하겠다고 고려에 알려 왔습니다. 우왕과 최영은 명이 오기 전에 먼저 치기로 하고, 1388년 요동을 공격할 군대를 보냈습니다. 이성계는 이 군대를 이끈 두 지휘관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군대가 압록강 한가운데에 있는 섬 위화도에 이르자, 이성계는 군대를 돌려 돌아가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최영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우왕도 계속 나아가라고 재촉했습니다. 1388년 5월 이성계는 결국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리고 우왕과 최영을 몰아내고 나라의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 사건을 위화도 회군이라 부릅니다.

위화도 회군이 고려 왕조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회군 뒤에는 이성계와 그를 따르는 세력이 군대와 조정을 모두 장악했고, 1392년 이성계는 마침내 스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렇게 고려는 474년 만에 막을 내렸고, 조선이라는 새 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왕건이 세운 나라가 이렇게 끝을 맺은 것입니다. 조선의 이야기는 다음 과정에서 이어집니다.

  • 1258: 쌍성총관부 설치
  • 1270: 개경 환도
  • 1271: 원 성립
  • 1356: 기철 숙청, 쌍성총관부 수복
  • 1368: 명 건국
  • 1377: 화통도감 설치
  • 1380: 진포 대첩
  • 1388: 위화도 회군
  • 1392: 조선 건국
쌍성총관부1258~1356년 몽골이 다스린 동북 지역
공민왕1356년 원의 간섭을 끊으려 한 왕
기철1356년 숙청된 친원 세력
화통도감1377년 화약 무기 기관
최무선화약 개발, 1380년 진포에서 화포
위화도 회군1388년 이성계의 회군
핵심 정리
  • 1270년 뒤 고려는 원의 간섭을 받았고, 왕은 원의 공주와 혼인했습니다.
  • 1356년 공민왕은 기철을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되찾았습니다.
  • 홍건적과 왜구가 쳐들어왔고, 화통도감(1377)의 화포가 진포(1380)에서 쓰였습니다.
  • 1388년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했고 1392년 조선을 세웠습니다.
  1. 쿠빌라이의 딸과 처음 혼인한 고려 왕은?
    • 충렬왕
    • 공민왕
    • 고종
    • 우왕
  2. 공민왕이 기철을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되찾은 해는?
  3. 쌍성총관부는 1258년부터 1356년까지 있었습니다. 몇 년인가요?
  4. 이성계는 누구의 아들인가요?
    • 쌍성총관부 수복을 도운 이자춘
    • 최영
    • 공민왕
    • 기철
  5. 화통도감은 무엇인가요?
    • 화약 무기를 만드는 기관
    • 인쇄 기관
    • 원의 관청
    • 청자 가마
  6. 1380년 진포 대첩에서 처음 있었던 일은?
    • 해전에서 화포 사용
    • 철갑선
    • 배 위의 기병
    • 몽골 연합군
  7. 1388년 고려가 요동 정벌을 계획한 까닭은?
    • 명이 철령 이북 땅을 차지하려 해서
    • 원이 침입해서
    • 왜구의 근거지여서
    • 여진이 도움을 청해서
  8. 이성계가 군대를 돌린 곳은?
    • 위화도
    • 강화도
    • 진도
    • 처인성
  9. 고려가 멸망한 해는?
  10. 차례로 놓으세요.
이 과정의 출처 (11)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고려 「후삼국의 통일」「노비안검법」「광종」「최승로」「최승로 시무28조(고려사)」「귀주대첩」「천리장성 수축」「윤관의 9성 설치」「여진족이 건국한 금의 팽창」「거란(요)의 건국과 발전」「발해 멸망」「이자겸의 난」「무신정변」「교정도감」「만적의 난」「몽골의 고려침입」「처인성 전투」「김윤후」「삼별초」「쌍성총관부」「공민왕」「직지심체요절」「진포대첩」「요동 정벌」「위화도회군」「삼국사기」「명 태조 주원장」, 교과서 용어 해설 「강동 6주」「천리장성」「송상」「위화도 회군」, 고등학교 국사 7차 「거란의 침입과 격퇴」「이자겸의 난과 서경 천도 운동」「무신 정권의 성립」, 재미있는 초등역사 「서희」「고려청자」, 신편 한국사 15권 「금과의 통교」 17권 「≪삼국사기≫의 편찬」, 한국문화사 「상감청자의 제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개경, 후삼국 통일, 서희, 시무28조, 천리장성, 묘청의 난, 만적의 난, 삼별초항쟁, 기철,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 국립중앙박물관 (museum.go.kr)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청자 상감동채 모란무늬 매병」
  •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unescoicdh.org)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 국가기록원 「직지와 흥덕사지」 (theme.archives.go.kr)
  • 금성출판사 티칭백과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문화재청 2015년 8월 경판 수 81,352장 발표 인용)
  • Where sources disagree: Battle of Gwiju 1019 (우리역사넷, 7차 교과서) vs 1018 (3차 초등 교과서, the year the invasion began)
  • completion of the Cheolli Jangseong 1044 (우리역사넷) vs 104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Tripitaka Koreana 81,258 blocks (colonial-era count, includes Joseon recarvings) vs 81,352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recount, 2015)
  • inlaid celadon from the mid-12th century (우리역사넷 초등역사) vs common only from the late 12th century (한국문화사)
  • start of Yuan interference 1259 or 1270.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