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벌 귀족과 무신 정권
1198년 최충헌의 집 노비 만적은 개경의 노비들과 함께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봉기를 꾀했습니다.
12세기에 이르면 몇몇 큰 집안이 대대로 나라의 가장 높은 벼슬을 차지했습니다. 이 집안들은 딸을 왕에게 시집보내 왕실과 혼인을 맺었고, 땅을 넓게 모았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들을 문벌 귀족이라 부릅니다. 집안의 이름과 지위가 대대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문벌 귀족의 힘이 가장 커진 것은 이자겸 때였습니다. 이자겸은 인종의 외할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장인이기도 했습니다. 딸을 왕에게 시집보내고, 다시 그 왕의 아들에게도 딸을 시집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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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사이 두 번의 난
1126년 이자겸은 혼인으로 맺어진 사돈이자 자기편인 장수 척준경과 함께 왕을 따르는 측근 세력을 치고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 싸움 와중에 궁궐이 불에 탔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척준경이 이자겸에게 등을 돌려 그를 몰아냈고, 척준경 자신도 탄핵을 받아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권력을 잡았던 두 사람이 모두 오래가지 못한 것입니다. 같은 해, 고려는 그 무렵 이 지역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된 금을 윗나라로 섬기기로 했습니다.
불탄 궁궐, 그리고 금 앞에서 고개를 숙인 일은 서경 출신의 승려 묘청에게 기회가 되었습니다. 서경은 지금의 평양입니다. 묘청은 땅의 기운을 따지는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개경의 땅 기운이 이미 다했으니 서경으로 도읍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서경에는 왕을 위한 새 궁궐 대화궁이 지어졌습니다. 도읍을 옮길 준비가 실제로 시작된 셈입니다. 묘청을 따르는 무리는 왕이 황제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쓰며, 금을 정벌하자고도 주장했습니다. 개경 세력이 이 계획에 반대하고 나서자 묘청은 1135년 서경에서 난을 일으켰습니다. 김부식이 이끄는 개경의 토벌군이 이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145년, 바로 그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완성했습니다. 『삼국사기』는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삼국 시대의 역사서입니다.
1170년 무신정변
의종이 다스리던 때가 되자 문신과 무신 사이의 차별이 매우 커졌습니다. 문신은 우대받았지만 무신은 업신여김을 당했고, 하급 군인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군인전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1170년 정중부와 이의방 등 무신들이 마침내 들고일어났습니다. 이들은 많은 문신을 죽이고 의종을 왕위에서 끌어내려 거제도로 귀양 보냈습니다. 우리역사넷은 이 사건을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 결과는 약 100년 동안 무신이 나라를 다스리는 무신 집권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하룻밤의 정변이 한 세기의 정치를 바꾼 셈입니다.
무신 집권의 처음 수십 년은 피로 얼룩졌습니다. 이의방, 이고,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가 쓰러졌습니다. 권력을 잡은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밀려나는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1196년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씨 정권을 열었습니다. 한 집안이 대를 이어 권력을 쥔 이 정권은 1258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최충헌은 왕에게 봉사 10조라는 열 가지 개혁안을 올렸지만, 실제로는 자기 손에 땅과 노비, 사병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1209년부터는 정식 정부 위에 서는 새 기구인 교정도감을 통해 권력을 휘둘렀고, 도방이라는 사병 기관을 두어 자신을 지키게 했습니다.
아래로부터의 봉기
무신 집권은 옛 질서를 뒤흔들었고, 신분의 맨 아래에 있던 사람들도 들고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176년 공주의 특수 행정 구역인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가 봉기했고, 그리고 1182년에는 전주에서 나라에 속한 노비인 관노들이 일어났습니다. 1198년에는 최충헌 집안의 사노비였던 만적이 개경의 노비들과 함께 신분 해방을 얻으려는 봉기를 꾀했습니다. 우리역사넷은 이 이야기의 첫머리에 그의 외침을 적고, 이를 「장수, 재상? 노비라고 못하란 법 있는가!」로 요약합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시작하기도 전에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봉기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 1126: 이자겸의 난
- 1135: 묘청의 서경 난
- 1145: 『삼국사기』 편찬
- 1170: 무신정변
- 1176: 망이·망소이의 봉기
- 1196: 최충헌 집권
- 1198: 만적의 난
- 1209: 교정도감 설치
| 문벌 귀족 |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큰 집안 |
| 이자겸 | 인종의 외조부이자 장인, 1126년의 난 |
| 묘청 | 서경 천도를 주장한 승려, 1135년의 난 |
| 정중부 | 1170년 무신정변의 주동자 |
| 교정도감 | 1209년부터 최씨 정권의 최고 기구 |
| 만적 | 1198년 봉기를 꾀한 최충헌의 사노비 |
- 문벌 귀족이 권력을 쥐었고, 1126년 이자겸의 난으로 궁궐이 불탔습니다.
- 1135년 묘청이 서경에서 난을 일으켰고, 김부식이 진압한 뒤 1145년 『삼국사기』를 펴냈습니다.
- 1170년 무신정변으로 약 100년의 무신 집권이 시작되었고, 최씨 정권은 1196년부터 1258년까지 이어졌습니다.
- 명학소(1176), 전주(1182), 만적(1198) 등 백성과 노비의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 이자겸은 인종과 어떤 관계였나요?
- 외할아버지이자 장인
- 형
- 스승
- 삼촌
- 묘청이 주장한 것은?
- 서경 천도와 금 정벌
- 몽골과 강화
- 과거 폐지
- 강화도로 이동
- 묘청의 난을 진압한 사람은?
- 김부식
- 정중부
- 강감찬
- 최충헌
- 『삼국사기』가 편찬된 해는?
- 무신정변이 일어난 해는?
- 1170년 무신정변의 원인으로 알맞은 것은?
- 무신 차별과 군인전 미지급
- 몽골 침입
- 불교 금지
- 새 도읍
- 최씨 정권이 권력을 휘두른 기구는?
- 교정도감
- 화통도감
- 대장도감
- 별무반
- 최씨 정권은 1196년부터 1258년까지 이어졌습니다. 몇 년인가요?
- 만적은 누구인가요?
- 최충헌의 사노비
- 거란 장수
- 승려
- 고려의 왕
- 차례로 놓으세요.
이 과정의 출처 (11)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고려 「후삼국의 통일」「노비안검법」「광종」「최승로」「최승로 시무28조(고려사)」「귀주대첩」「천리장성 수축」「윤관의 9성 설치」「여진족이 건국한 금의 팽창」「거란(요)의 건국과 발전」「발해 멸망」「이자겸의 난」「무신정변」「교정도감」「만적의 난」「몽골의 고려침입」「처인성 전투」「김윤후」「삼별초」「쌍성총관부」「공민왕」「직지심체요절」「진포대첩」「요동 정벌」「위화도회군」「삼국사기」「명 태조 주원장」, 교과서 용어 해설 「강동 6주」「천리장성」「송상」「위화도 회군」, 고등학교 국사 7차 「거란의 침입과 격퇴」「이자겸의 난과 서경 천도 운동」「무신 정권의 성립」, 재미있는 초등역사 「서희」「고려청자」, 신편 한국사 15권 「금과의 통교」 17권 「≪삼국사기≫의 편찬」, 한국문화사 「상감청자의 제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개경, 후삼국 통일, 서희, 시무28조, 천리장성, 묘청의 난, 만적의 난, 삼별초항쟁, 기철,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 국립중앙박물관 (museum.go.kr)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청자 상감동채 모란무늬 매병」
-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unescoicdh.org)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 국가기록원 「직지와 흥덕사지」 (theme.archives.go.kr)
- 금성출판사 티칭백과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문화재청 2015년 8월 경판 수 81,352장 발표 인용)
- Where sources disagree: Battle of Gwiju 1019 (우리역사넷, 7차 교과서) vs 1018 (3차 초등 교과서, the year the invasion began)
- completion of the Cheolli Jangseong 1044 (우리역사넷) vs 104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Tripitaka Koreana 81,258 blocks (colonial-era count, includes Joseon recarvings) vs 81,352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recount, 2015)
- inlaid celadon from the mid-12th century (우리역사넷 초등역사) vs common only from the late 12th century (한국문화사)
- start of Yuan interference 1259 or 1270.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