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종과 성종, 나라의 틀을 세우다
958년 고려의 첫 과거 시험에서 합격한 사람은 7명뿐이었습니다.
왕건은 지방 세력가들과 손을 잡아 나라를 하나로 묶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왕의 자리는 사병과 많은 식솔을 거느린 힘센 집안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습니다. 왕건이 죽은 뒤에는 실제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누구인가가 문제였습니다. 왕일까요, 아니면 왕조를 세우는 데 힘을 보탠 큰 집안들일까요? 두 왕이 이 물음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답했습니다. 제4대 왕 광종은 힘과 새 법을 앞세워 왕권을 귀족들보다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제6대 왕 성종은 한 유학자의 도움을 받아 나라에 오래 이어질 틀을 갖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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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종, 노비를 풀어 주고 과거를 열다
956년 광종은 노비를 조사하라고 명했습니다. 원래 양인이었는데 신라 말의 전쟁 통에 노비가 된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다시 양인으로 풀어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법을 노비안검법이라 합니다. 노비를 조사해 가려내는 법이라는 뜻입니다. 노비는 귀족의 일꾼이었고 때로는 귀족의 사병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법은 흔히 귀족의 힘을 꺾으려는 조치로 설명됩니다. 우리역사넷은 여기에 한 가지 주의할 점을 덧붙입니다. 나라의 공식 기록인 『고려사』 세가의 956년 기록에는 이 법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자세한 내용은 광종의 왕비 대목왕후의 열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광종이 죽은 뒤에는 반발이 거세졌습니다. 그래서 987년에는 풀려난 사람 일부를 다시 노비로 돌려보내는 노비환천법이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광종은 고려의 첫 과거 시험을 열었습니다. 과거를 처음 건의한 사람은 쌍기라는 중국 관리입니다. 쌍기는 956년 후주의 사신을 따라 고려에 왔다가 병이 나서 남게 되었는데, 그의 재주를 알아본 광종이 청해서 고려에 머물렀습니다. 쌍기는 958년 시험의 책임자인 지공거를 맡았습니다. 이 시험은 시·부·송과 시무책(그때그때의 나랏일에 대한 글)을 시험했고, 제술업, 명경업, 잡업의 세 분야에서 모두 7명을 뽑았습니다. 이로써 처음으로 집안만이 아니라 공부로도 관직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관리가 되는 길이 태어난 집안에만 달려 있던 시대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과거는 이 제도를 만든 왕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시대에 따라 모습을 조금씩 바꾸어 가며 고려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고, 그 뒤 조선 말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광종은 조정의 다른 부분도 손보았습니다. 관리들이 입는 공복을 두 차례 정비했는데, 처음인 956년에는 모든 관리의 옷을 중국의 제도에 따르게 했습니다. 관리의 옷차림부터 나라의 제도에 맞춘 것입니다. 이런 조치들이 함께 쌓이면서 관리들은 큰 집안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왕을 섬기는 신하처럼 보이고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성종과 최승로의 시무 28조
982년, 왕위에 오른 첫해에 성종은 5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지금 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의견을 글로 적어 올리게 했습니다. 이때 56세였던 최승로가 긴 글을 올렸습니다. 최승로는 경주에서 태어났고, 옛 신라 6두품 집안의 후예로 여겨집니다. 글의 앞부분에서는 태조 왕건 이후 다섯 왕을 하나하나 평가하며 잘한 점은 칭찬하고 잘못한 점은 비판했습니다. 뒷부분에서는 지금 당장 해야 할 과제 28가지를 들었습니다. 이것을 시무 28조라 부릅니다.
성종은 이 글의 내용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습니다. 최승로의 제안은 글로만 끝나지 않고 실제 정책이 되었습니다. 중앙의 힘이 지방에까지 미치도록 전국의 주요 지역 열두 곳에 12목을 두고 왕이 보낸 지방관을 파견했습니다. 또 팔관회를 폐지하고 집을 절로 바꾸는 일을 금했습니다. 983년에는 시무 28조를 올린 최승로가 직접 그해의 과거를 주관했습니다. 그해 장원으로 뽑힌 사람이 바로 강감찬입니다. 강감찬은 뒷날 1019년 거란을 물리치는 장군이 됩니다.
| 왕, 해 | 조치 | 목적 |
|---|---|---|
| 광종, 956 | 노비안검법 | 귀족 약화 |
| 광종, 958 | 과거제 | 실력 선발 |
| 성종, 982 | 시무 28조 | 유교 정치 |
| 성종 | 12목 지방관 | 지방 통제 |
| 노비안검법 |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풀어 준 956년의 법 |
| 과거 | 958년 처음 시행된 관리 선발 시험 |
| 쌍기 | 과거를 건의한 후주 출신 관리 |
| 최승로 | 982년 시무 28조를 올린 유학자 |
| 12목 | 지방관을 보낸 열두 지역 |
| 노비환천법 | 풀려난 노비 일부를 되돌린 987년의 법 |
- 광종의 노비안검법(956)은 억울한 노비를 풀어 주고 귀족을 약하게 했습니다.
- 쌍기의 건의로 958년 첫 과거를 치러 7명을 뽑았습니다.
- 최승로의 시무 28조(982)가 성종의 유교 정치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 12목에 지방관을 보냈고, 983년 과거의 장원은 강감찬이었습니다.
- 노비안검법을 실시한 해는?
- 노비안검법의 내용은?
-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돌림
- 노비 제도를 완전히 없앰
- 농민을 모두 노비로 만듦
- 노비를 중국에 팖
- 노비안검법이 귀족을 약하게 한 까닭은?
- 노비가 그들의 일꾼이자 사병이었기 때문
- 세금을 올려서
- 땅을 빼앗아서
- 혼인을 금해서
- 첫 과거가 치러진 해는?
- 과거 시행을 건의한 사람은?
- 쌍기
- 최승로
- 서희
- 김부식
- 첫 과거의 합격자는 몇 명인가요?
- 982년의 시무 28조는?
- 최승로가 성종에게 올린 의견
- 불경
- 거란과의 화약
- 토지 조사
- 시무 28조 뒤에 나타난 변화는?
- 12목에 지방관 파견
- 도읍을 평양으로 옮김
- 불교를 유일한 법으로
- 과거 폐지
- 983년 과거의 장원은?
- 강감찬
- 서희
- 윤관
- 최충헌
- 노비안검법은 956년, 노비환천법은 987년입니다. 몇 년 차이인가요?
이 과정의 출처 (11)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고려 「후삼국의 통일」「노비안검법」「광종」「최승로」「최승로 시무28조(고려사)」「귀주대첩」「천리장성 수축」「윤관의 9성 설치」「여진족이 건국한 금의 팽창」「거란(요)의 건국과 발전」「발해 멸망」「이자겸의 난」「무신정변」「교정도감」「만적의 난」「몽골의 고려침입」「처인성 전투」「김윤후」「삼별초」「쌍성총관부」「공민왕」「직지심체요절」「진포대첩」「요동 정벌」「위화도회군」「삼국사기」「명 태조 주원장」, 교과서 용어 해설 「강동 6주」「천리장성」「송상」「위화도 회군」, 고등학교 국사 7차 「거란의 침입과 격퇴」「이자겸의 난과 서경 천도 운동」「무신 정권의 성립」, 재미있는 초등역사 「서희」「고려청자」, 신편 한국사 15권 「금과의 통교」 17권 「≪삼국사기≫의 편찬」, 한국문화사 「상감청자의 제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개경, 후삼국 통일, 서희, 시무28조, 천리장성, 묘청의 난, 만적의 난, 삼별초항쟁, 기철,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 국립중앙박물관 (museum.go.kr)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청자 상감동채 모란무늬 매병」
-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unescoicdh.org)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 국가기록원 「직지와 흥덕사지」 (theme.archives.go.kr)
- 금성출판사 티칭백과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문화재청 2015년 8월 경판 수 81,352장 발표 인용)
- Where sources disagree: Battle of Gwiju 1019 (우리역사넷, 7차 교과서) vs 1018 (3차 초등 교과서, the year the invasion began)
- completion of the Cheolli Jangseong 1044 (우리역사넷) vs 104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Tripitaka Koreana 81,258 blocks (colonial-era count, includes Joseon recarvings) vs 81,352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recount, 2015)
- inlaid celadon from the mid-12th century (우리역사넷 초등역사) vs common only from the late 12th century (한국문화사)
- start of Yuan interference 1259 or 1270.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