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나라의 성장: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
동예에서는 다른 부족의 산과 내를 침범하면 노비나 소, 말로 갚아야 했습니다. 이것을 책화라 불렀습니다.
쇠로 만든 도구가 널리 퍼지면서 만주와 한반도의 여러 곳에 새로운 나라들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 고고학계는 대체로 초기 철기 시대가 기원전 300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그 첫 단계를 기원전 300년경부터 서기 전후까지로 정리하고, 다른 계산으로는 기원전 100년까지로 봅니다. 한편 예전 교과서는 철기가 기원전 5세기경에 들어왔다고 썼습니다. 어느 쪽으로 보든, 고조선이 무너지던 무렵의 몇 세기 동안에는 여러 집단이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풍속은 중국 역사가들이 남긴 기록으로 전해집니다. 이 단원에서는 그 여러 나라 가운데 다섯 나라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차례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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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다섯 나라 가운데 가장 북쪽의 부여는 만주 송화강 유역의 넓은 평야에서 성장했습니다. 부여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으며, 말과 주옥, 모피가 이름난 특산물이었습니다. 부여는 이미 1세기 초에 왕이라는 칭호를 썼고, 중국과는 나라 대 나라로 외교 관계를 맺었습니다. 왕 아래에는 가축의 이름을 딴 관리들이 있었습니다. 말을 뜻하는 마가, 소를 뜻하는 우가, 돼지를 뜻하는 저가, 개를 뜻하는 구가입니다. 이 가들은 저마다 사출도라는 지역을 따로 다스렸고, 왕이 다스리는 중앙과 합쳐 5부를 이루었습니다. 가들은 왕을 추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홍수나 가뭄으로 곡식이 여물지 않으면 그 책임을 왕에게 묻기도 했습니다. 부여에도 고조선의 법과 비슷한 4조목의 법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에 따르면,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그 값의 12배를 갚아야 했습니다. 부여는 해마다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었고, 감옥의 죄수를 풀어 주었습니다. 부여는 3세기 말 선비족의 침략을 받으면서 쇠퇴했고, 494년 고구려에 편입되었습니다.
고구려
전승에 따르면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부여에서 남쪽으로 도망쳐 내려온 주몽이 세웠습니다. 고구려가 처음 자리 잡은 졸본은 큰 산과 깊은 골짜기뿐이고 농사지을 땅이 적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써 일해도 먹을 것이 모자랐습니다. 이 때문에 고구려는 나라를 세운 처음부터 밖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한의 군현을 공격했고, 옥저에게서 공물을 받았습니다. 고구려에도 부여처럼 왕 아래에 대가라는 큰 군장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죄를 지은 사람은 귀족들의 회의인 제가 회의에서 판결했습니다. 고구려는 10월에 동맹이라는 추수 감사 제천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주몽과 그 어머니 유화 부인을 조상신으로 섬겼습니다.
동해안의 옥저와 동예
옥저와 동예는 동해안을 따라, 지금의 함경도와 강원도 북부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두 나라는 이웃한 고구려의 압박에 눌려서, 끝내 여러 고을을 아우르는 더 큰 왕국으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을마다 읍군이나 삼로라는 군장이 따로 다스렸습니다. 옥저는 땅이 기름지고 물고기와 소금이 넉넉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고구려에 공물로 바쳐야 했습니다. 옥저에는 민며느리제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장차 며느리가 될 여자아이를 어릴 때 신랑 집에 데려다 키우는 풍습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한동안 임시로 묻었다가, 나중에 뼈를 추려 커다란 나무 덧널, 목곽에 함께 넣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쓰는 공동 무덤입니다. 한편 동예 사람들은 명주와 삼베를 짜서 옷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단궁이라는 활, 과하마라는 작은 말, 반어피라는 바다짐승의 가죽이 특산물로 알려졌습니다. 동예는 해마다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씨족 밖에서 혼인 상대를 찾았습니다. 또 씨족마다 자기 산과 내가 있어서 서로 그 경계를 존중했고, 남의 경계를 침범한 사람은 책화라는 규칙에 따라 갚아야 했습니다.
남쪽의 삼한
마지막으로 한강 남쪽에는 진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진은 마한, 진한, 변한이라는 세 연맹으로 자라났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마한에는 지금의 경기, 충청, 전라 지방에 걸쳐 54개의 소국가 있었습니다. 진한과 변한에는 각각 12개국이 있었는데, 진한은 대구·경주 일대에, 변한은 김해·마산 일대에 있었습니다. 삼한에는 정치를 맡은 지배자 말고도 천군이라는 제사장이 따로 있었습니다. 천군은 소도라는 신성한 구역에서 의례를 이끌었습니다. 소도 안에는 군장의 힘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이 소도로 도망쳐 들어가도 붙잡아 갈 수 없었습니다. 삼한 사람들은 쇠로 만든 농기구로 농사를 짓고 저수지를 쌓았습니다. 김제의 벽골제와 제천의 의림지가 이때부터 이어져 온 저수지입니다. 특히 변한에서는 철이 아주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했고, 철을 화폐처럼 쓰기도 했습니다. 삼한은 씨를 뿌린 뒤인 5월과 곡식을 거둔 뒤인 10월에 계절제를 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한에서는 백제가, 진한의 사로국에서는 신라가, 변한에서는 가야 연맹이 자라났습니다.
| 나라 | 제천 행사 | 기억할 풍속 |
|---|---|---|
| 부여 | 영고(12월) | 사출도를 다스린 네 가 |
| 고구려 | 동맹(10월) | 제가 회의 |
| 옥저 | 전하지 않음 | 민며느리제, 가족 공동 무덤 |
| 동예 | 무천(10월) | 책화, 족외혼 |
| 삼한 | 5월·10월 계절제 | 천군과 소도, 변한의 철 |
| 영고 | 부여의 12월 제천 행사 |
| 사출도 | 부여의 가들이 다스린 지역 |
| 동맹 | 고구려의 10월 제천 행사 |
| 민며느리제 | 옥저의 혼인 풍속 |
| 무천 | 동예의 10월 제천 행사 |
| 책화 | 동예에서 다른 부족 땅을 침범한 벌 |
| 소도 | 천군이 다스린 삼한의 신성 지역 |
- 부여: 네 가와 사출도, 영고. 494년 고구려에 편입되었습니다.
- 고구려: 전승상 기원전 37년 건국, 일찍부터 영토를 넓혔고 동맹을 열었습니다.
- 옥저와 동예: 동해안의 군장 사회. 민며느리제, 가족 공동 무덤, 무천, 책화.
- 삼한: 마한 54국, 진한·변한 각 12국. 천군과 소도, 변한의 철.
- 12월에 영고를 연 나라는?
- 부여
- 고구려
- 동예
- 마한
- 사출도는 무엇인가요?
- 부여의 가들이 다스린 지역
- 삼한의 저수지
- 고구려의 도읍
- 동예의 비단 공방
- 부여의 법에서 도둑은 얼마를 갚았나요?
- 12배
- 같은 값
- 2배
- 갚지 않음
- 부여가 고구려에 편입된 해는?
- 고구려의 제천 행사는?
- 동맹
- 영고
- 무천
- 소도
- 옥저의 풍속은?
- 민며느리제와 가족 공동 무덤
- 책화
- 소도
- 영고
- 책화는 무엇인가요?
- 다른 부족의 땅을 침범했을 때 갚는 것
- 삼한의 저수지
- 부여의 관리
- 철 화폐
- 마한은 몇 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나요?
- 마한 54국, 진한과 변한 각각 12국입니다. 모두 몇 국인가요?
- 소도의 특징은?
- 군장의 힘이 미치지 않아 죄인도 잡아가지 못했다
- 왕의 궁궐이었다
- 철광이었다
- 여자만 들어갈 수 있었다
-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한 곳은?
- 변한
- 마한
- 진한
- 옥저
- 북쪽에서 남쪽 순서로 놓으세요.
이 과정의 출처 (10)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중학교 국사 7차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중학교 국사 6차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 고등학교 국사 6차(상) 「고조선의 건국」「여러 나라의 성장」, 고등학교 국사 7차 「단군과 고조선」, 신편 한국사 3권 「청동기시대의 시기구분」, 한국사 연대기 「연천 전곡리 유적」「제주 고산리 유적」「비파형동검」「동국통감」, 한국문화사 27권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농경」, 우리 역사 깊이 읽기 「『삼국유사』 단군 신화의 검토」「단군 신화를 이해하는 몇 가지 논점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연천 전곡리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제주 고산리 유적, 철기시대
- 문화체육관광부·문화포털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유적」(mcst.go.kr, 세계유산 2000년 12월, 약 3만 기)
- 국립중앙박물관 (museum.go.kr) 소장 비파형동검·빗살무늬토기 (우리역사넷 이미지 출처 표기)
- World dates on the 3D timeline come from the edubun world-history courses (The Met, British Museum, Britannica)
- Where sources disagree: start of the Neolithic (textbook about 8000 BCE; Gosan-ri about 10,000 years ago)
- start of the Bronze Age (textbook 2000 to 1500 BCE; 신편 한국사 about 1000 BCE)
- start of the Iron Age (older textbooks 5th century BCE;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arly Iron Age about 300 BCE to the turn of the era, or to 100 BCE)
- the age of Jeongok-ri (300,000 to 200,000 years vs about 40,000 years)
- and the founding of Gojoseon (2333 BCE is the traditional date; 우리역사넷 notes a Bronze Age state cannot be placed before about the 12th century BCE).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