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시대: 토기와 마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토기는 제주 고산리 바닷가 유적에서 나왔습니다. 이 유적은 1987년 마을 주민의 신고로 처음 알려졌습니다.
약 1만 년 전에 마지막 빙하기가 끝났고, 한반도는 대체로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함께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 교과서는 신석기 시대, 다시 말해 새 석기 시대가 기원전 8000년경 시작되었다고 씁니다. 제주도의 고산리 유적은 가장 이른 신석기 유적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역사넷은 약 1만 년 전의 것으로 봅니다. 이는 기원전 8000년과 대략 같은 시기이므로, 이 표기만으로 더 앞선 연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연대는 어림해서 둥글게 잡은 숫자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발굴이 나올 때마다 이 시대의 시작점은 조금씩 앞당겨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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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하고 끓이는 그릇, 토기
이 새로운 시대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는 것은 바로 토기입니다. 흙을 빚어 불에 구울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곡식을 담아 두고, 물을 나르고, 음식을 끓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산리에서는 1987년에 한 마을 주민이 뗀석기를 찾아 신고했습니다. 이어서 1988년부터 덧무늬토기 조각이 수습되었고, 이 유적은 1998년 사적 제412호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가장 널리 쓰인 그릇은 빗살무늬토기입니다. 빗살무늬토기에는 짧고 비스듬한 선이 줄지어 있는데, 흙에 눌러 찍거나 긁어서 새긴 무늬입니다. 그런데 이 토기들은 밑이 뾰족하거나 둥근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마 모래나 무른 땅에 꽂아 두고 썼던 것으로 보입니다.
강가와 바닷가에 자리 잡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은 한반도 전체에 고루 퍼져 있고, 대부분 큰 강가와 바닷가를 따라 나옵니다. 사람들은 뼈로 만든 낚싯바늘과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조개를 캐었고, 돌창과 돌화살로 짐승을 사냥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사람들은 농사도 짓기 시작했습니다. 돌괭이로 땅을 일구어 조와 피라는 곡식을 길렀습니다. 다 자란 곡식은 돌로 만든 돌낫이나 뼈로 만든 뼈낫으로 거두었고, 거둔 곡식은 갈판에 올려놓고 갈았습니다. 유물로 알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가락바퀴는 이들이 실을 뽑았다는 것을, 뼈바늘은 옷을 지어 입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한곳에 머물러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에 둥글거나 네모난 구덩이를 파고, 그 둘레에 기둥을 세운 뒤 지붕을 덮었습니다. 이런 집을 움집이라고 합니다. 한강 가에 있는 서울 암사동 유적에는 움집 마을이 통째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는 여러 교과서에 실린 대표 사진입니다. 같은 핏줄을 가진 한 씨족의 가족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고, 여러 씨족이 모여 부족을 이루었습니다. 농사와 사냥은 경험이 많은 부족의 어른인 부족장이 이끌었습니다. 구석기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한곳에 머물러 살았습니다.
같은 때 다른 곳에서는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아주 길었습니다. 그리고 암사동 마을 사람들이 토기에 무늬를 눌러 새기던 무렵, 세계의 다른 곳은 빠르게 바뀌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3300년경에는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우루크에서 점토판에 처음으로 글자를 썼습니다. 기원전 2550년경에는 이집트에서 쿠푸 왕을 위한 대피라미드가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에는 그 뒤로도 수천 년 동안 글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의 선사 시대는 이집트보다 훨씬 길게 이어집니다. 연표의 「세계」 줄을 열면 이 사건들을 신석기 시대의 띠와 나란히 볼 수 있습니다.
- about 10,000 years ago: 제주 고산리, 가장 이른 신석기 유적
- about 8000 BCE: 교과서의 신석기 시작
- Neolithic: 암사동의 빗살무늬토기와 움집
- about 2000 to 1500 BCE: 청동기 시대 시작(교과서)
| 빗살무늬토기 | 밑이 뾰족한 경우가 많은 빗살무늬 그릇 |
| 간석기 | 갈아서 만든 석기 |
| 움집 | 땅을 파고 지붕을 덮은 집 |
| 가락바퀴 | 실을 뽑는 도구 |
| 암사동 | 서울 한강 가의 신석기 마을 유적 |
| 고산리 | 약 1만 년 전 제주의 가장 이른 신석기 유적 |
- 교과서는 신석기 시작을 기원전 8000년경으로, 제주 고산리 유적은 약 1만 년 전으로 봅니다.
- 토기, 간석기, 가락바퀴, 뼈바늘이 나타납니다.
- 강가와 바닷가의 움집에 정착하고 조, 피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 씨족이 마을과 부족을 이루고 경험 많은 부족장이 이끌었습니다.
-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는?
- 빗살무늬토기
- 민무늬토기
- 청자
- 검은 옻칠 그릇
-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신석기 유적은?
- 제주 고산리
- 서울 암사동
- 연천 전곡리
- 부여 송국리
- 신석기 사람들이 처음 기른 곡식은?
- 조와 피
- 벼
- 빵용 밀
- 감자
- 가락바퀴는 무엇에 썼나요?
- 실 뽑기
- 곡식 갈기
- 물고기 잡기
- 불 피우기
- 신석기 사람들의 집은?
- 움집
- 동굴만
- 돌로 쌓은 성
- 기와집
- 신석기 유적은 주로 어디에서 나오나요?
- 큰 강가와 바닷가
- 높은 산 위
- 제주에만
- 만주에만
- 고산리 유적은 1987년에 알려져 1998년 사적 제412호가 되었습니다. 몇 년 차이인가요?
- 교과서의 신석기 시작 연대와 고산리 연대가 달라 보이는 까닭은?
- 둘 다 어림한 숫자이고 거의 같은 시기여서
- 고산리가 가짜라서
- 신석기가 1987년에 시작되어서
- 연대를 투표로 정해서
- 신석기 부족에서 농사와 사냥을 이끈 사람은?
- 경험 많은 부족장
- 군대를 거느린 왕
- 불교 승려
- 중국의 관리
- 오래된 것부터 차례로 놓으세요.
이 과정의 출처 (10)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중학교 국사 7차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중학교 국사 6차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 고등학교 국사 6차(상) 「고조선의 건국」「여러 나라의 성장」, 고등학교 국사 7차 「단군과 고조선」, 신편 한국사 3권 「청동기시대의 시기구분」, 한국사 연대기 「연천 전곡리 유적」「제주 고산리 유적」「비파형동검」「동국통감」, 한국문화사 27권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농경」, 우리 역사 깊이 읽기 「『삼국유사』 단군 신화의 검토」「단군 신화를 이해하는 몇 가지 논점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연천 전곡리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제주 고산리 유적, 철기시대
- 문화체육관광부·문화포털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유적」(mcst.go.kr, 세계유산 2000년 12월, 약 3만 기)
- 국립중앙박물관 (museum.go.kr) 소장 비파형동검·빗살무늬토기 (우리역사넷 이미지 출처 표기)
- World dates on the 3D timeline come from the edubun world-history courses (The Met, British Museum, Britannica)
- Where sources disagree: start of the Neolithic (textbook about 8000 BCE; Gosan-ri about 10,000 years ago)
- start of the Bronze Age (textbook 2000 to 1500 BCE; 신편 한국사 about 1000 BCE)
- start of the Iron Age (older textbooks 5th century BCE;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arly Iron Age about 300 BCE to the turn of the era, or to 100 BCE)
- the age of Jeongok-ri (300,000 to 200,000 years vs about 40,000 years)
- and the founding of Gojoseon (2333 BCE is the traditional date; 우리역사넷 notes a Bronze Age state cannot be placed before about the 12th century BCE).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