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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 전쟁(676)과 발해의 건국

신라와 당나라의 7년 전쟁은 고구려가 망한 지 8년 뒤인 676년에 기벌포에서 끝났습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차례로 무너지자, 두 나라를 함께 무너뜨린 신라와 당의 동맹도 깨지고 말았습니다. 당나라는 한반도 전체를 자기 손에 넣고 다스리려 했습니다. 그리고 신라가 자기 군대를 지휘하는 일에까지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라의 지도층은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신라와 당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한반도 남쪽을 다스릴 나라가 당이 아니라 신라로 정해졌습니다. 그사이 북쪽의 옛 고구려 땅에서는 698년에 발해라는 새로운 나라가 일어났습니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나란히 서 있던 이 시기를 흔히 남북국 시대라고 부릅니다.

나당 전쟁, 670~676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신라와 당의 이 전쟁이 모두 7년 동안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전쟁은 670년 3월에 시작되었습니다. 신라가 기다리지 않고 압록강 너머에 있는 오골성을 먼저 공격한 것입니다. 같은 무렵 고구려 유민들도 여러 무리를 지어 당에 맞서 일어났습니다. 이 고구려 부흥 운동은 670년부터 684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이 전쟁에서 신라가 언제나 이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672년 8월에는 석문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크게 지기도 했습니다. 전쟁의 흐름이 크게 바뀐 것은 675년 9월이었습니다. 이때 신라는 육지에서 벌어진 매소성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를 이겼습니다. 그리고 676년 11월, 금강 어귀의 기벌포에서 벌어진 바다 싸움을 끝으로 전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긴 덕분에 신라는 옛 백제 땅의 대부분과 고구려의 남쪽 일부를 하나의 정부 아래 묶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676년을 삼국 통일의 해로 배우는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이 통일이 가진 한계도 함께 짚습니다. 북쪽과 만주에 있던 옛 고구려 땅의 상당 부분은 신라의 영역 밖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땅은 머지않아 발해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영주를 빠져나오다

배경668년 이후 당은 많은 고구려 사람을 고향에서 먼 곳으로 옮겨 살게 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영주로, 지금의 요령성 조양입니다. 696년 5월, 거란족의 추장 이진충이 영주의 당나라 도독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영주가 혼란에 빠지자, 그 틈을 타서 두 무리가 동쪽으로 빠져나갔습니다. 하나는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이 이끄는 무리였고, 다른 하나는 걸사비우가 이끄는 무리였습니다. 당은 이들에게 벼슬을 내리며 돌아오라고 달랬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당은 장군 이해고를 보내 이들을 뒤쫓게 했습니다. 이해고와 맞선 싸움에서 걸사비우가 전사했습니다. 그러자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 사람들을 이끌고 천문령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뒤쫓아 온 당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렀습니다. 기록에는 이해고 혼자만 살아 돌아갔다고 적혀 있을 만큼 큰 승리였습니다.

발해, 698~926년

당군을 물리친 대조영은 무리를 이끌고 더 동쪽으로 나아가, 영주에서 2,000리나 떨어진 곳까지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698년 동모산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동모산은 지금의 길림성 돈화시 근처에 있는 성산자산성으로 봅니다. 처음에 대조영은 나라 이름을 진국이라 했고, 발해라는 이름은 713년부터 썼습니다. 그런데 옛 기록들은 대조영이 누구였는지를 서로 다르게 적습니다. 어떤 기록은 「고구려의 별종」으로, 어떤 기록은 「속말말갈」로, 또 어떤 기록은 「고구려의 옛 장수」로 적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세 가지 설명이 모두 합쳐져야 대조영과 그 무리가 누구였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발해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 집단이 함께 세운 하나의 나라였다는 뜻입니다.

나라를 세운 뒤 발해는 도읍을 여러 번 옮겼습니다. 2대 최근 연구에 따르면 무왕이 도읍을 현주로 옮겼으며, 예전에는 이를 문왕 때의 일로 보았습니다. 3대 문왕은 도읍을 상경으로 옮겼다가, 다스린 기간의 말년에 다시 동경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5대 성왕이 794년 다시 상경으로 돌아왔고, 그 뒤로는 나라가 망할 때까지 상경이 도읍이었습니다. 발해는 넓은 나라를 5경 15부 62주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연호를 따르지 않고 인안, 대흥 같은 독자적인 연호를 썼습니다. 이웃 나라들과 대등한 나라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9세기 전반 선왕 때에 이르러서는 말갈 집단 대부분을 자기 아래로 복속시켰습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신라와 국경을 맞댈 만큼 영토를 넓혔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발해를 「바다 동쪽의 번성한 나라」라는 뜻으로 해동성국이라 불렀습니다.

발해의 끝은 갑자기 빨리 찾아왔습니다. 거란은 야율아보기라는 지도자 아래 하나로 뭉쳤고, 916년 요나라를 세웠습니다. 한편 발해가 약해진 까닭으로는 지배층 안의 다툼, 내분이 흔히 꼽힙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926년, 거란이 쳐들어오자 발해는 멸망했습니다. 나라가 망한 뒤에도 일부 유민은 옛 발해 땅에 남아 계속 저항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은 남쪽의 고려로 내려왔습니다. 고려는 그 뒤 936년에 한반도를 다시 하나로 통일한 나라입니다.

발해를 어느 나라의 역사로 보느냐는 학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 러시아의 역사학자들은 발해가 어떤 나라였는지를 서로 다르게 설명합니다. 이 과정은 그 가운데 국사편찬위원회의 설명을 따릅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발해를 고구려를 이은 나라로 설명합니다.
남북국 시대를 나타낸 단순화 지도: B 발해, S 신라. 1 동모산(돈화 근처, 698년), 2 상경(발해의 마지막 도읍), 3 경주, 4 기벌포(676년). 원은 중심 지역만 나타내며 국경이 아닙니다.
  • 670: 신라가 오골성을 치며 나당 전쟁이 시작됩니다.
  • 672: 석문 전투에서 신라가 패합니다.
  • 675: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가 이깁니다.
  • 676: 기벌포 전투로 전쟁이 끝납니다.
  • 696: 영주에서 거란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 698: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진국을 세웁니다.
  • 713: 국호를 발해로 바꿉니다.
  • 794: 도읍을 다시 상경으로 옮깁니다.
  • 926: 발해가 거란에 멸망합니다.
매소성 전투 (675)전세를 신라 쪽으로 돌린 육지 싸움
기벌포 전투 (676)금강 어귀에서 벌어진 나당 전쟁의 마지막 싸움
대조영698년 발해를 세운 인물
동모산발해의 첫 도읍, 지금의 돈화 근처
해동성국번성한 발해를 부른 이름
5경 15부발해의 행정 구역(62주와 함께)
핵심 정리
  • 나당 전쟁은 670년부터 676년까지 이어졌고, 매소성(675)과 기벌포(676)에서 승부가 났습니다.
  • 신라는 백제 땅 대부분과 고구려 남쪽을 통일했지만 북쪽은 포함하지 못했습니다.
  • 대조영이 698년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웠고, 발해라는 이름은 713년부터 썼습니다.
  • 발해는 9세기에 번성했고 926년 거란에 멸망했습니다.
  1. 나당 전쟁이 기벌포에서 끝난 해는?
  2. 전쟁은 670년에 시작해 676년에 끝났습니다. 두 해를 모두 세면 몇 해 동안인가요?
  3. 전세를 신라 쪽으로 돌린 싸움은?
    • 매소성 전투(675)
    • 석문 전투(672)
    • 살수대첩(612)
    • 관산성 전투(554)
  4. 신라가 동맹이던 당과 싸운 까닭은?
    • 당이 한반도 전체와 신라 군대까지 지배하려 해서
    • 당이 고구려와 싸우지 않으려 해서
    • 신라가 중국을 정복하려 해서
    • 발해가 시켜서
  5. 대조영이 나라를 세운 해는?
  6. 698년에 세운 나라가 713년에 발해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몇 년 뒤인가요?
  7. 발해는 698년부터 926년까지 이어졌습니다. 몇 년인가요?
  8. 926년 발해를 무너뜨린 세력은?
    • 거란(요)
    • 당
    • 신라
    • 여진의 금
  9. 해동성국의 뜻은?
    • 바다 동쪽의 번성한 나라
    • 흰 산의 왕국
    • 고요한 아침의 나라
    • 북쪽 도읍
  10. 순서대로 놓으세요.
이 과정의 출처 (9)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고대 (고구려 건국, 고구려의 천도, 율령 반포, 광개토대왕릉비, 고구려·수 전쟁, 살수대첩, 고구려·당 전쟁, 고구려 부흥운동, 관산성전투, 백제 건국, 신라 건국, 박혁거세, 김수로왕, 포상팔국의 난, 대가야 멸망, 거칠부, 발해 건국, 발해의 천도, 발해 멸망)
  • 신편 한국사 6권 (웅진천도와 정정의 불안, 웅진시대)
  • 교과서 속 우리역사 (삼국의 불교 수용, 백제와 일본의 교류, 발해의 발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이차돈, 법흥왕, 나당전쟁, 황산벌전투, 수로왕
  • 국립중앙박물관 (museum.go.kr): 사유의 방, 금동 반가사유상 (덕수3312)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unesco.or.kr):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2023)
  • Founding dates before about 300 CE follow the Samguk sagi and Samguk yusa as reported by these sources
  • historians debate them. Map coastlines: Natural Earth 1:110m (public domain)
  • circles mark core areas only, not borders.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