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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 건국

이성계는 1392년 7월 개경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지만, 그 뒤 몇 달 동안 나라 이름은 여전히 고려였습니다.

조선은 한국의 마지막 왕조입니다. 세계사 전체를 둘러보아도 조선만큼 오래 이어진 왕실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조선의 임금들은 1392년부터 나라를 다스렸고, 1897년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꿀 때까지 조선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이름이 바뀐 뒤에도 같은 왕실이 1910년까지 왕좌를 지켰습니다. 오늘 서울을 찾는 사람들이 보는 것 가운데 많은 부분이 이 시대에서 왔습니다. 궁궐의 문도,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이어진 성벽도 대부분 이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이 첫 단원에서는 전쟁터에서 이름을 얻은 장군 한 사람이 어떻게 새 나라를 세우게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왕조가 바뀌는 큰일이었는데도 수도에서는 생각보다 싸움이 적었던 까닭도 차례로 봅니다.

흔들리던 고려 말

1300년대 후반의 고려는 여러 방향에서 한꺼번에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바다에서는 왜구가 쳐들어와 해안 마을을 약탈했고, 북쪽 국경으로는 무장한 무리가 넘어왔습니다. 나라 안에서는 힘 있는 가문들이 엄청나게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고, 보통 농민들은 세금을 내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중국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몽골이 세운 원나라가 무너지는 중이었고, 그 자리에 새로 명나라가 일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려 조정의 관리들은 어느 쪽과 손을 잡아야 할지를 두고 크게 갈라져 격렬하게 다투었습니다.

이성계는 바로 이 무렵 이름을 얻었습니다. 해안을 약탈하는 왜구와 북쪽에서 쳐들어오는 세력을 상대로 싸울 때마다 이기는 장수였기 때문입니다. 군사들은 그를 믿고 따랐습니다. 개혁을 바라던 신진 학자들도 그를 주목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정도전입니다. 이들은 이성계를 자신들이 바라는 변화를 실제로 이루어 줄 지도자로 보았습니다. 정도전은 뒤에 새 나라의 설계도 가운데 많은 부분을 직접 그렸습니다. 나라의 법에서부터 궁궐 전각의 이름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친 것이 많습니다.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리다

배경1388년 고려 조정은 군대를 북쪽으로 보내 요동 지방을 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요동은 명나라가 자기 땅이라며 차지하려던 곳이었습니다. 이성계는 이 군대의 지휘관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처음부터 이 원정에 반대했습니다. 군대가 국경을 흐르는 압록강의 섬 위화도에 이르렀을 때, 장맛비가 쏟아져 강물이 크게 불었고 군대는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성계는 결국 군대를 돌려 수도 개경으로 돌아왔습니다. 원정을 밀어붙인 지휘관 최영은 쫓겨났고, 우왕은 왕위에서 물러났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이 펴낸 신편 한국사는 왕조가 바뀌는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그 첫 단계가 바로 이 위화도 회군입니다.

그 뒤 4년 동안 두 명의 왕, 창왕과 공양왕이 차례로 세워졌다가 물러났습니다. 반대하는 세력은 조정에서 밀려났고, 토지 개혁이 이루어져 옛 권문세족의 힘도 크게 줄었습니다. 그리고 1392년 7월, 이성계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있던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역사에서는 그를 태조라 부릅니다. 태조는 크게 나라를 연 임금이라는 뜻으로, 처음 나라를 세운 임금에게 붙이는 묘호입니다.

나라 이름이 한동안 고려였던 까닭

왕이 새로 섰다고 해서 나라 이름이 곧바로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태조는 고려라는 이름을 그대로 썼고, 대부분의 제도와 의례도 예전 그대로 두었습니다. 백성의 일상생활이 혼란에 빠지고 민심이 크게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태조는 또 명나라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이 즉위한 사실을 알리고 승인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명의 승인은 국경의 평화를 지키는 데도 중요했고, 나라 안에서 새 왕의 정통성과 위상을 세우는 데도 꼭 필요했습니다. 명 황제는 왕조가 바뀐 것을 받아들였고, 새 나라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조정은 두 가지 이름을 올렸습니다. 하나는 조선이었습니다. 조선은 오늘날 우리가 고조선이라고 부르는 옛 나라의 이름입니다. 다른 하나는 화령이었는데, 태조가 태어난 영흥의 옛 이름입니다. 명 황제는 조선이라는 이름이 아름답고 그 유래도 오래되었다며 조선을 골랐고, 새 국호는 1393년 초부터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라 이름을 다른 나라의 임금에게 고르게 한 일은 지금 보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조정은 새 나라를 세우는 동안 힘센 이웃 나라와의 팽팽한 관계부터 안정시키려 했고, 그런 계산이 이 일에 깔려 있었습니다.

「1392년 7월」 같은 날짜는 조선왕조실록이 쓴 음력을 따른 것입니다. 태조가 즉위한 날은 자료에 따라 그달 16일 또는 17일로 서로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는 날짜를 적지 않고 달까지만 씁니다.
  • 1388: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립니다.
  • 1392: 태조가 개경에서 즉위하고, 국호는 한동안 고려로 둡니다.
  • 1393: 국호를 조선으로 정합니다.
  • 1394: 도읍을 한양으로 옮깁니다.
  • 1897: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꿉니다.
  • 1910: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며 왕조가 끝납니다.
이성계1392년 조선을 세우고 태조가 된 장군
정도전새 나라의 제도를 크게 설계한 학자
위화도 회군 (1388)요동 원정군을 압록강 섬에서 되돌린 사건
개경고려의 수도, 태조가 즉위한 곳
화령태조의 고향에서 따온 또 하나의 국호 후보
1393년조선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한 해
핵심 정리
  • 조선은 1392년 장군 이성계(태조)가 세웠습니다.
  • 1388년 위화도 회군이 왕조 교체의 첫 단계였습니다.
  • 태조는 처음에 고려라는 국호를 두고 명에 즉위 승인을 청했습니다.
  • 두 후보 가운데 조선이 골라져 1393년부터 국호가 되었습니다.
  1.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해는?
  2. 태조가 즉위한 곳은?
    • 개경 수창궁
    • 한양 경복궁
    • 위화도
    • 베이징의 궁궐
  3. 1388년 위화도에서 있었던 일은?
    • 이성계가 군대를 돌렸다
    • 조선이라는 국호를 정했다
    •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했다
  4. 조선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한 해는?
  5. 조정이 올린 두 국호 후보는?
    • 조선과 화령
    • 고려와 신라
    • 한양과 개경
    • 대한과 광무
  6. 태조가 처음에 고려라는 이름을 그대로 둔 까닭은?
    • 민심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 명이 그렇게 명령해서
    • 고려를 되살릴 생각이어서
    • 도읍을 정하지 못해서
  7. 새 나라의 제도를 크게 설계한 학자는?
    • 정도전
    • 정약용
    • 박지원
    • 이순신
  8. 태조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것은?
    • 처음 나라를 연 임금
    • 큰 장군
    • 큰 학자
    • 큰 건축가
  9. 위화도 회군과 태조 즉위는 몇 년 차이인가요?
  10. 조선이라는 국호는 1393년부터 1897년까지 쓰였습니다. 몇 년인가요?
이 과정의 출처 (9)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조선·근대 (한양 천도, 경복궁, 한양도성, 훈민정음, 자격루, 임진왜란, 한산도 해전, 명량해전, 이순신, 실학, 북학의, 정약용, 척화비, 강화도 조약, 환구단)
  • 신편 한국사 22·23권 (태조 즉위의 승인과 국호개정, 문과·무과·잡과)
  • 우리역사넷 용어 (과거 제도, 상민, 목민심서)
  • 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과 좌절, 사료로 본 한국사 (정약용의 거중기, 강화도 조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노량해전, 명량대첩, 대동여지도, 열하일기, 박지원, 균전론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digital.khs.go.kr): 경복궁, 수원 화성
  • 국가유산청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heritage.go.kr): 훈민정음 해례본
  • 국립중앙박물관 대동여지도 전시 안내 (2026)
  • Lunar-calendar dates are given as recorded in the Annals.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