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과 경복궁
1395년에 처음 지은 경복궁은 390여 칸 크기였고, 이름은 『시경』에서 임금의 큰 복을 비는 구절을 따왔습니다.
서울은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의 수도였습니다. 서울을 수도로 고른 것은 태조였습니다. 태조는 조선을 세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의 옛 도읍 개경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개경은 앞 왕조의 권문세족이 깊이 뿌리내린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정은 여러 후보지를 직접 둘러보며 조사한 끝에 한강 가에 있는 한양을 새 도읍으로 정했고, 1394년 음력 10월에 도읍을 옮겼습니다. 이듬해인 1395년에는 도시 이름을 한성부로 바꾸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뒤로도 한양이라는 이름을 계속 널리 썼습니다. 오늘날의 서울이 바로 이 한양입니다.
계획에 따라 지은 도시
한양은 임금이 사는 도읍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유교의 생각에 맞추어 설계되었습니다. 으뜸 궁궐은 도시의 북쪽에 두었는데, 북악산을 뒤에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게 앉혔습니다. 임금이 남쪽을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은 동쪽이 됩니다. 이 동쪽에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인 종묘를 세웠습니다. 임금의 오른쪽인 서쪽에는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인 사직을 두었습니다. 궁궐 정문에서 남쪽으로 곧게 뻗은 넓은 길을 따라 관청과 시전이 줄지어 늘어섰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한가운데로는 개천이 흘렀는데, 이 물줄기는 도시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흘러갔습니다. 궁궐과 종묘, 사직, 큰길이 모두 이 생각에 따라 자리를 잡은 셈입니다.
경복궁을 짓다
도읍을 옮기기로 결정한 뒤 곧바로 으뜸 궁궐을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고, 궁궐은 1395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처음 지은 경복궁은 390여 칸 규모로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의 한 칸을 세는 한국의 건축 단위입니다. 전각들은 궁궐 한가운데를 지나는 축을 따라 좌우가 대칭이 되도록 놓였습니다. 맨 앞쪽에는 나라의 큰 의식을 치르는 법전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임금이 신하들을 만나 나랏일을 의논하는 편전이 있었고, 가장 뒤쪽에는 임금이 잠자고 쉬는 침전이 자리했습니다.
도성과 4대문
1396년에는 도시를 둘러싼 네 산의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아 도성을 완성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부는 돌로, 일부는 흙으로 쌓았고, 세종 때 이 성벽을 모두 돌로 고쳐 쌓았습니다. 흙으로 쌓은 부분까지 모두 돌로 바꾼 것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도성의 길이를 약 18km로 적고 있습니다. 도성에는 크게 네 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동쪽의 흥인지문,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 북쪽의 숙정문이 그것이고, 이 4대문 말고도 작은 문인 4소문이 있었습니다.
불타고, 비고, 다시 지어진 궁궐
경복궁의 역사는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일본군이 쳐들어왔을 때 경복궁은 창덕궁, 종묘와 함께 모두 불에 타 버렸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조정은 경복궁 대신 창덕궁을 다시 지었고, 경복궁은 약 270년 동안 폐허로 남았습니다. 으뜸 궁궐이 그 긴 세월 동안 빈 터로 남은 것입니다. 1865년 섭정을 맡고 있던 흥선대원군이 예전보다 더 큰 규모로 경복궁을 다시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 공사는 1867년에 끝났고, 이듬해 고종이 경복궁으로 옮겨 와 살았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많은 전각이 다시 헐렸고, 1991년부터 지금까지 복원 공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1394: 한양으로 천도하고 궁궐 공사를 시작합니다.
- 1395: 경복궁이 완성됩니다.
- 1396: 한양도성을 쌓습니다.
- 1592: 임진왜란으로 궁궐이 불탑니다.
- 1865~1867: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합니다.
- 1991~: 복원 공사가 시작되어 이어집니다.
| 경복궁 | 1395년 완성된 으뜸 궁궐, 「큰 복」 |
| 종묘 | 궁궐 동쪽의 왕실 사당 |
| 사직 | 궁궐 서쪽의 토지·곡식 신 제단 |
| 근정전 | 법전, 「부지런한 정치」 |
| 숭례문 | 도성의 남쪽 대문 |
| 흥선대원군 | 1865~1867년 경복궁을 중건한 섭정 |
- 1394년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 경복궁은 1395년에 완성되었고, 이름과 전각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습니다.
- 궁궐 동쪽에 종묘, 서쪽에 사직을 두었습니다.
- 1592년에 불탄 궁궐은 1865~1867년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해는?
- 경복궁이 처음 완성된 해는?
- 「경복」의 뜻은?
- 큰 복
- 북쪽 궁궐
- 부지런한 정치
- 영원한 평화
- 종묘는 궁궐의 어느 쪽에 있었나요?
- 동쪽
- 서쪽
- 북쪽
- 남쪽
- 사직은 무엇이었나요?
-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
- 왕실 도서관
- 남쪽 대문
- 시전 거리
- 도성의 남쪽 대문은?
- 숭례문
- 흥인지문
- 돈의문
- 숙정문
- 임진왜란 뒤 조정이 경복궁 대신 다시 지은 궁궐은?
- 창덕궁
- 경운궁
- 수창궁
- 화성
- 경복궁은 1592년에 불탔고 1865년에 중건을 시작했습니다. 몇 년 차이인가요?
- 한양도성은 1396년에 쌓았습니다. 천도 후 몇 년 뒤인가요?
- 1860년대 경복궁 중건을 이끈 사람은?
- 흥선대원군
- 세종
- 정도전
- 정조
이 과정의 출처 (9)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조선·근대 (한양 천도, 경복궁, 한양도성, 훈민정음, 자격루, 임진왜란, 한산도 해전, 명량해전, 이순신, 실학, 북학의, 정약용, 척화비, 강화도 조약, 환구단)
- 신편 한국사 22·23권 (태조 즉위의 승인과 국호개정, 문과·무과·잡과)
- 우리역사넷 용어 (과거 제도, 상민, 목민심서)
- 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과 좌절, 사료로 본 한국사 (정약용의 거중기, 강화도 조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노량해전, 명량대첩, 대동여지도, 열하일기, 박지원, 균전론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digital.khs.go.kr): 경복궁, 수원 화성
- 국가유산청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heritage.go.kr): 훈민정음 해례본
- 국립중앙박물관 대동여지도 전시 안내 (2026)
- Lunar-calendar dates are given as recorded in the Annals.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