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훈민정음
세종은 1443년 겨울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고, 그 글자를 풀이한 책은 3년 뒤인 1446년 음력 9월에 나왔습니다.
1440년대 이전에 이 땅의 사람들은 말은 우리말로 하면서 글은 한문으로 썼습니다. 한자 수천 자를 익히려면 몇 해가 걸렸습니다. 그래서 글을 읽고 쓰는 일은 대부분 교육을 받은 양반 같은 소수의 몫이었습니다. 농민과 상인, 그리고 대부분의 여성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어 남길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학자들조차 자기가 입으로 하는 말을 남의 나라 글로 옮겨서 적어야 했습니다. 조선의 네 번째 임금 세종은 이 틈을 메우려고 나섰습니다. 세종이 생각한 방법은 우리말의 소리에 맞추어 만든 새 글자였습니다.
재고 셈하기를 좋아한 임금
세종은 1418년부터 1450년까지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세종은 경복궁 안에 집현전이라는 기관을 두었습니다. 이곳에서 젊은 학자들이 공부하며 나라에 필요한 책을 준비하고 만들었습니다. 집현전이라는 이름은 어질고 뛰어난 사람을 모은 집이라는 뜻입니다. 세종이 다스리던 시기에는 시간을 재고 하늘을 관측하는 기구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자격루는 정해진 시각이 되면 스스로 종과 북과 징을 쳐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입니다. 장영실 등이 1433년에 이 자격루를 완성했고, 1434년부터 실제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에는 솥을 엎어 놓은 모양의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만들어 사람이 많이 오가는 다리인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했습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도 누구나 시각을 알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시각을 아는 일이 궁궐 안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게 된 셈입니다.
스물여덟 글자
조선왕조실록에는 1443년 음력 12월에 임금이 친히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고, 이를 훈민정음이라 불렀다고 적혀 있습니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입니다. 스물여덟 글자는 자음 17자와 모음 11자였습니다. 그 가운데 네 글자는 뒤에 쓰이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오늘날의 한국어는 기본 글자 24자로 씁니다. 오늘날 한글이라 부르는 글자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문자가 특별한 까닭은 글자의 모양을 아무렇게나 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새 글자를 처음 소개한 책이 글자 하나하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직접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본 자음 다섯 자는 각각의 소리를 낼 때 발음 기관이 어떤 모양이 되는지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ㄱ은 혀뿌리가 올라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나타냅니다. ㄴ은 혀끝이 윗니 뒤의 잇몸에 닿는 모양을 나타냅니다. ㅁ은 입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고, ㅅ은 이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며, 동그라미 모양의 ㅇ은 목구멍을 나타냅니다. 나머지 자음은 이 다섯 글자에 획을 더해서 만들었는데, 획이 더해질수록 더 센 소리를 나타냅니다. 모음은 세 가지 요소에서 출발합니다. 하늘을 본뜬 점(·), 땅을 본뜬 평평한 가로줄(ㅡ), 그리고 서 있는 사람을 본뜬 세로줄(ㅣ)입니다. 이 세 가지를 서로 붙이고 합쳐서 나머지 모음을 만들었습니다.
1446년에 나온 책
1446년 음력 9월, 새 글자를 세상에 알리는 목판본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의 이름도 글자 이름과 같은 『훈민정음』입니다. 오늘날에는 문자 이름과 구별하려고 이 책을 흔히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르는데, 풀이와 보기가 들어 있는 판본이라는 뜻입니다. 책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부분은 세종이 직접 쓴 「예의」로, 글자를 만든 까닭과 글자마다 어떤 소리를 나타내는지가 실려 있습니다. 뒷부분은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 8명이 쓴 더 긴 「해례」로, 자세한 풀이와 보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은 500년 가까이 한 권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40년 안동에서 한 권이 발견되었습니다. 지금은 국보로 지정되어 간송미술관에 있으며,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습니다. 새 글자를 만든 원리를 밝힌 책이 이렇게 오늘까지 전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세종의 서문을 두 가지 모습으로 실었습니다. 첫 번째 상자는 한문 원문을 짧은 구절로 나누어 적은 것입니다. 두 번째 상자는 그 뜻을 오늘날 쓰는 쉬운 말로 옮긴 현대어 풀이입니다. 각각을 몇 번 소리 내어 읽은 다음, 단추를 눌러 낱말을 가리고 기억으로 다시 채워 보세요.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 故愚民 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 易習 便於日用耳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하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 1418: 세종이 즉위합니다.
- 1434: 자격루를 쓰기 시작합니다.
- 1443: 세종이 훈민정음 28자를 만듭니다.
- 1446: 『훈민정음』(해례본)을 펴냅니다.
- 1940: 안동에서 해례본이 발견됩니다.
- 1997: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릅니다.
| 훈민정음 |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
| 1443년 | 세종이 글자를 만든 해 |
| 1446년 | 해례본을 펴낸 해 |
| 28자 | 자음 17자, 모음 11자 |
| 집현전 | 경복궁 안의 학문 연구 기관 |
| 자격루 | 1434년부터 쓴 자동 물시계 |
| 10월 9일 | 한글날 |
- 세종은 1443년에 28자를 만들었고, 풀이한 책은 1446년에 나왔습니다.
- 기본 자음은 발음 기관을, 모음은 하늘·땅·사람을 본떴습니다.
- 해례본은 1940년에 발견되어 1997년 세계기록유산이 되었습니다.
- 서문은 누구나 쉽게 익히도록 글자를 만들었다고 밝힙니다.
-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해는?
- 해례본을 펴낸 해는?
- 처음 만든 글자는 몇 자였나요?
- 그 가운데 네 글자가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기본 글자는 몇 자인가요?
- 훈민정음의 뜻은?
-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 임금의 새 글
- 아침의 나라 글자
- 큰 글
- 기본 자음은 무엇을 본떴나요?
- 발음 기관
- 한자
- 하늘의 별
- 집의 부분
- 모음의 세 기본은?
- 하늘, 땅, 사람
- 불, 물, 나무
- 해, 달, 별
- 산, 강, 바다
- 해례본이 발견된 곳과 해는?
- 안동, 1940년
- 서울, 1910년
- 경주, 1962년
- 부산, 1997년
- 해례본의 「해례」를 쓴 사람들은?
- 집현전 학자 8명
- 명나라 관리
- 승려들
- 장영실 혼자
- 한글날은 언제인가요?
- 10월 9일
- 3월 1일
- 8월 15일
- 10월 3일
이 과정의 출처 (9)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조선·근대 (한양 천도, 경복궁, 한양도성, 훈민정음, 자격루, 임진왜란, 한산도 해전, 명량해전, 이순신, 실학, 북학의, 정약용, 척화비, 강화도 조약, 환구단)
- 신편 한국사 22·23권 (태조 즉위의 승인과 국호개정, 문과·무과·잡과)
- 우리역사넷 용어 (과거 제도, 상민, 목민심서)
- 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과 좌절, 사료로 본 한국사 (정약용의 거중기, 강화도 조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노량해전, 명량대첩, 대동여지도, 열하일기, 박지원, 균전론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digital.khs.go.kr): 경복궁, 수원 화성
- 국가유산청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heritage.go.kr): 훈민정음 해례본
- 국립중앙박물관 대동여지도 전시 안내 (2026)
- Lunar-calendar dates are given as recorded in the Annals.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