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제도와 신분
정기 문과 시험은 3년마다 열렸고 합격자는 딱 33명이었는데, 이 숫자는 불교의 33천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조선은 글로 치르는 시험에 합격한 관리들이 다스리는 나라였습니다. 이런 시험인 과거는 중국에서 들어온 제도로, 한국에서는 이미 고려 때부터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과거를 관리가 되는 가장 중요한 길로 삼았습니다. 그 뒤 500년 동안 과거에 합격하느냐가 한 사람의 벼슬길과 집안의 명예를 좌우했습니다. 그런데 과거는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갈리는 사회 안에서 치러졌습니다. 그래서 법으로 누가 시험을 볼 수 있었는지와 실제로 누가 시험을 볼 수 있었는지는 서로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단원은 이 두 가지를 함께 다룹니다.
문과, 무과, 잡과
과거에는 크게 세 가지 시험이 있었습니다. 첫째, 문과는 학자 관리를 뽑는 시험으로 셋 가운데 가장 높이 대접받았습니다. 둘째, 무과는 무관을 뽑는 시험으로 활쏘기와 말타기 실력을 보고, 병법서를 읽고 풀이하는 강독도 시험했습니다. 셋째, 잡과는 전문 기술관을 뽑는 시험으로 네 분야가 있었습니다. 외국어를 통역하는 역과, 의학을 다루는 의과, 천문과 지리를 다루는 음양과, 법률을 다루는 율과입니다. 문과를 보기 전에는 그보다 앞서 치르는 두 가지 시험이 있었는데, 이를 소과라 불렀습니다. 생원시는 유교 경전을 시험했고 진사시는 시와 글짓기를 시험했으며, 두 시험은 각각 100명씩 뽑았습니다.
세 번의 시험과 33명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험은 식년시라 했고, 3년마다 한 번씩 열렸습니다. 왕실에 경사가 있을 때 같은 특별한 일이 생기면 별시를 따로 열었는데, 1500년대 이후에는 이런 별시가 점점 잦아졌습니다. 식년 문과는 모두 세 번의 시험을 거쳐야 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인 초시에서는 8도에서 치르는 향시가 150명, 서울의 한성시가 40명, 나라의 최고 교육 기관인 성균관의 관시가 50명을 뽑았습니다. 두 번째로 서울에서 치르는 복시에서는 이렇게 모인 240명 가운데 33명만 골랐습니다. 마지막 시험인 전시는 임금 앞에서 치렀는데, 여기서는 떨어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전시는 이미 합격한 33명의 등수만 정하는 시험이었습니다.
무과도 문과와 같은 세 단계를 거쳤고, 식년시에서는 28명을 뽑았습니다. 다만 조선 후기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뽑는 일이 잦았습니다. 지금까지 든 숫자들은 1485년에 최종적으로 반포된 법전 『경국대전』에 실린 것입니다. 이 법전은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정해 두었고, 조선이 끝날 때까지 나라 운영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법으로는 둘, 현실에서는 넷
법으로 보면 조선 사회의 신분은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하나는 자유로운 백성인 양인이고, 다른 하나는 노비를 포함한 자유롭지 못한 천인입니다. 이를 양천제라 합니다. 원칙적으로는 양인이라면 누구나 과거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는 이보다 더 잘게 층이 나뉘어 있었습니다. 맨 위에는 관리와 학자를 내는 집안인 양반이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중인이 있었는데, 역관이나 의관 같은 기술관과 지방 관청의 향리 등으로 이루어진 중간 계층이었습니다. 그다음은 상민으로, 세금의 대부분을 내고 군역을 진 보통의 농민, 수공업자, 상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맨 아래에 천민이 있었습니다.
양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문과를 자기들 몫으로 지켰습니다. 문과를 준비하려면 몇 해씩 공부에만 매달려야 했는데, 농사를 지어 먹고사는 집안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양반의 아들이라도 첩에게서 태어난 서얼은 시험을 보는 데 제약을 받았습니다. 한편 중인은 대체로 잡과에만 응시할 수 있었고, 그 기술관 자리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과거라는 제도는 학문을 쌓은 사람에게 보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학문을 할 수 있느냐는 그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 계층 | 누구 | 주로 본 시험 |
|---|---|---|
| 양반 | 관리와 학자 집안 | 문과, 무과 |
| 중인 | 역관, 의관, 향리 등 | 잡과 |
| 상민 | 농민, 수공업자, 상인 | 법으로는 가능, 실제로는 드묾 |
| 천민 | 노비 등 | 응시 불가 |
| 문과 | 학자 관리를 뽑는 시험, 33명 |
| 무과 | 무관을 뽑는 시험, 식년시 28명 |
| 잡과 | 역과·의과·음양과·율과 |
| 식년시 | 3년마다 여는 정기 시험 |
| 양반 | 관리와 학자를 내는 지배층 |
| 중인 | 기술관과 향리 등의 중간 계층 |
| 경국대전 | 1485년 최종 반포된 법전 |
- 조선은 문과, 무과, 잡과로 관리를 뽑았습니다.
- 정기 시험은 3년마다 열렸고 문과 합격자는 33명이었습니다.
- 법으로는 양인과 천인, 현실에서는 네 계층이었습니다.
- 문과는 양반이 차지했고, 중인은 주로 잡과를 보았습니다.
- 식년 문과의 합격자는 몇 명인가요?
- 식년시는 몇 년마다 열렸나요?
- 초시 합격자는 150 + 40 + 50명입니다. 모두 몇 명인가요?
- 복시에서는 초시 합격자 240명이 33자리를 두고 겨루었습니다. 떨어진 사람은 몇 명인가요?
- 전시에서는 무엇을 했나요?
- 33명의 등수를 정했다
- 절반을 떨어뜨렸다
- 활쏘기만 시험했다
- 제비뽑기로 정했다
- 잡과에 속하지 않는 분야는?
- 활쏘기
- 통역
- 의학
- 법률
- 법전에 따르면 식년 무과 합격자는 몇 명인가요?
- 법으로 정한 조선의 신분 두 가지는?
- 양인과 천인
- 양반과 중인
- 문반과 무반
- 서울과 지방
- 주로 잡과에 응시한 계층은?
- 중인
- 양반
- 천민
- 왕족
- 『경국대전』이 최종 반포된 해는?
- 문과 급제자가 받은 합격증은?
- 붉은 종이 홍패
- 흰 종이 백패
- 은 도장
- 말 한 필
이 과정의 출처 (9)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조선·근대 (한양 천도, 경복궁, 한양도성, 훈민정음, 자격루, 임진왜란, 한산도 해전, 명량해전, 이순신, 실학, 북학의, 정약용, 척화비, 강화도 조약, 환구단)
- 신편 한국사 22·23권 (태조 즉위의 승인과 국호개정, 문과·무과·잡과)
- 우리역사넷 용어 (과거 제도, 상민, 목민심서)
- 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과 좌절, 사료로 본 한국사 (정약용의 거중기, 강화도 조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노량해전, 명량대첩, 대동여지도, 열하일기, 박지원, 균전론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digital.khs.go.kr): 경복궁, 수원 화성
- 국가유산청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heritage.go.kr): 훈민정음 해례본
- 국립중앙박물관 대동여지도 전시 안내 (2026)
- Lunar-calendar dates are given as recorded in the Annals.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