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왜란
1597년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은 좁은 물목에서 전선 13척으로 일본 군선 133척을 상대했습니다.
조선은 나라를 세운 뒤 200년 동안 큰 전쟁 없이 국경 충돌과 작은 원정만 겪었습니다. 그러다 1592년 큰 전쟁이 닥쳤습니다. 오랜 내전을 막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엄청난 규모의 군대를 보내 바다를 건너온 것입니다. 그가 내세운 목표는 조선을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7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명나라 군대가 조선을 도우러 들어오면서 동아시아 세 나라가 맞붙는 국제전이 되었고, 한반도의 많은 곳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1592년은 60년마다 돌아오는 육십갑자로 임진년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 전쟁을 임진왜란이라 부릅니다.
부산 상륙
1592년 음력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가 이끄는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했습니다. 부산진성을 지키던 장수 정발과 동래의 송상현이 맞서 싸웠지만, 두 곳 모두 끝내 함락되었습니다. 일본군은 아주 빠르게 북쪽으로 밀고 올라왔습니다. 조선은 이만한 규모의 전쟁이 일어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선조는 도읍 한양을 떠났고, 임금이 없는 사이에 경복궁을 비롯한 한양의 궁궐들이 불에 탔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읍까지 적에게 내준 것입니다.
바다를 지킨 수군
전쟁의 흐름이 바뀐 곳은 바다였습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1년 남짓 동안 미리 배를 만들고 무기를 모아 갖추어 두었습니다. 그의 함대는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싸움마다 잇달아 이겼습니다. 일본 수군은 적의 배에 올라타서 싸우는 방식에 기대고 있었는데, 이순신은 이에 맞서 총통을 쏘고 배를 부딪쳐 깨뜨리는 전술을 썼습니다. 1592년 음력 7월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은 좁은 물길인 견내량에 머물던 일본 함대를 넓은 바다로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의 학익진으로 적을 둘러싸 일본 배 대부분을 격파했습니다. 한산도대첩은 육지에서 거둔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꼽힙니다. 바다를 지킨 이 승리들이 전쟁 전체의 흐름을 바꾸었습니다.
이순신의 함대가 바닷길을 막자 일본군은 서해안을 따라 배로 북쪽의 군대에 물자를 실어 나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라의 가장 큰 곡창 지대인 전라도도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백성들이 스스로 의병을 일으켰고, 명나라 군대도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의병은 나라의 군대가 아니라 백성이 스스로 모여 만든 군대였습니다. 조선과 명나라의 조명 연합군은 한양을 되찾았고, 일본군을 남해안까지 밀어냈습니다. 1593년 음력 8월, 이순신은 세 도의 수군을 모두 거느리는 삼도수군통제사에 처음으로 올랐습니다.
13척의 배
마지막 해전
1598년 음력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군은 서둘러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은 일본군이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돌아가게 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마지막 싸움을 걸었습니다. 음력 11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순신과 명나라의 수군 장수 진린이 이끄는 조명 연합 함대가 노량 앞바다에서 물러나는 일본 함대를 공격했습니다. 노량은 남해도와 하동 사이에 있는 해협입니다. 연합 함대는 크게 이겼지만, 이순신은 이 싸움에서 총탄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마지막 일본군이 성에서 모두 물러나면서 7년 동안의 전쟁은 끝났습니다. 이 마지막 바다 싸움을 노량해전이라 부릅니다.
전쟁의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고, 논밭은 오랫동안 갈지 못한 채 버려졌으며, 기록과 건물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 상처는 오래 남았습니다. 이 전쟁은 동아시아 전체의 판도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명나라는 막대한 전쟁 비용 때문에 힘이 크게 빠졌고, 일본에는 곧이어 새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조선에게 이 전쟁의 경험은 그 뒤 몇백 년 동안 나라를 지키는 방식과 일본을 바라보는 눈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 1592.4: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합니다.
- 1592.7: 이순신이 한산도에서 크게 이깁니다.
- 1593.8: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됩니다.
- 1597.7: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무너집니다.
- 1597.9: 명량해전, 13척으로 133척을 막습니다.
- 1598.11: 노량해전, 이순신이 전사합니다.
| 임진왜란 | 1592~1598년 일본의 침략 전쟁 |
| 이순신 | 수군 지휘관, 1545~1598 |
| 한산도 해전 (1592) | 학익진으로 거둔 큰 승리 |
| 명량해전 (1597) | 13척으로 133척에 맞선 해전 |
| 노량해전 (1598) | 마지막 해전, 이순신 전사 |
| 의병 | 스스로 일어난 민간 군대 |
- 1592년 음력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했습니다.
- 이순신의 수군이 일본의 보급로를 끊었고, 한산도대첩이 결정적이었습니다.
- 1597년 명량에서 조선 전선 13척이 133척을 물리쳤습니다.
- 1598년 노량해전을 끝으로 전쟁이 끝났고, 이순신은 전사했습니다.
-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는?
- 일본군이 처음 상륙한 곳은?
- 부산
- 인천
- 원산
- 강화도
- 임진왜란이라는 이름의 뜻은?
- 1592년이 육십갑자로 임진년이어서
- 임진강에서 시작되어서
- 임진이라는 장수가 이끌어서
- 「바다 전쟁」이라는 뜻이라서
- 한산도 해전에서 쓴 진형은?
- 학익진
- 일자진
- 방진
- 원진
- 명량해전에 나선 조선 전선은 몇 척인가요?
- 명량으로 들어온 일본 군선은 몇 척인가요?
- 133척 대 13척이면 조선 배 한 척에 적선이 대략 몇 척인가요? 반올림해서 정수로 답하세요.
- 이순신이 전사한 해전은?
- 노량해전
- 명량해전
- 한산도 해전
- 옥포해전
- 조선을 도우러 군대를 보낸 나라는?
- 명나라
- 청나라
- 러시아
- 포르투갈
- 수군의 승리가 중요했던 까닭은?
- 바닷길로 오는 일본군 보급을 막아서
- 도쿄를 점령해서
- 1592년에 전쟁을 끝내서
- 명의 수도를 지켜서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처음과 끝 해를 모두 세면 전쟁은 몇 년인가요?
이 과정의 출처 (9)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조선·근대 (한양 천도, 경복궁, 한양도성, 훈민정음, 자격루, 임진왜란, 한산도 해전, 명량해전, 이순신, 실학, 북학의, 정약용, 척화비, 강화도 조약, 환구단)
- 신편 한국사 22·23권 (태조 즉위의 승인과 국호개정, 문과·무과·잡과)
- 우리역사넷 용어 (과거 제도, 상민, 목민심서)
- 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과 좌절, 사료로 본 한국사 (정약용의 거중기, 강화도 조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노량해전, 명량대첩, 대동여지도, 열하일기, 박지원, 균전론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digital.khs.go.kr): 경복궁, 수원 화성
- 국가유산청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heritage.go.kr): 훈민정음 해례본
- 국립중앙박물관 대동여지도 전시 안내 (2026)
- Lunar-calendar dates are given as recorded in the Annals.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