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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대한제국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새로 쌓은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황제가 되었으며, 다음 날 나라 이름을 대한으로 정했습니다.

1890년대는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위태로운 10년이었습니다.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청과 일본은 전쟁을 벌였는데, 그 까닭의 하나는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누가 갖느냐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일본이 이겼습니다. 조선을 둘러싼 다툼에서 청이 물러난 것입니다. 이어서 이번에는 러시아가 일본의 맞수로 끼어들었습니다. 이 다툼의 한가운데서 고종은 대담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조선이 청, 일본과 같은 지위에 선 황제의 나라이며, 자신이 그 나라의 황제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 마지막 단원에서는 고종이 왜 그렇게 했는지, 새 제국이 무엇을 바꾸려 했는지, 그리고 그 제국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설명합니다.

궁궐에서 벌어진 시해와 아관파천

1895년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가 경복궁 안의 건청궁에서 일본인들에게 시해되었습니다. 자기 목숨도 위태롭다고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 11일 몰래 서울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1년 가까이 그곳에서 나랏일을 보았습니다. 임금이 자기 궁궐이 아닌 외국 공사관에서 나라를 다스린 것입니다. 이 일을 아관파천이라 하는데, 임금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했다는 뜻입니다. 그사이 고종은 오늘날 덕수궁이라 부르는 경운궁을 고쳐 짓게 했고, 1897년 2월 그 궁궐로 돌아와 머물렀습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1년 가까이 머문 뒤에야 궁궐로 돌아온 것입니다.

황제의 나라를 선포하다

조선의 왕은 몇백 년 동안 중국 황제를 맨 꼭대기에 둔 질서 안에서 왕의 지위에 있었습니다. 황제는 중국에만 있고, 조선의 임금은 그 아래의 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895년 청이 전쟁에서 진 뒤 그 질서는 무너졌습니다. 고종은 조선이 자주독립국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은 황제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운궁 가까이에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인 환구단을 새로 쌓았습니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황제만 쓸 수 있는 색인 노란색의 황룡포를 입고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렸고, 그 자리에서 황제에 올랐습니다. 이튿날 고종은 황제로서 첫 조칙을 내렸습니다.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정하고, 이 해를 광무 원년으로 삼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광무는 「빛나는 무력」이라는 뜻으로, 조정이 그해 8월에 이미 정해 둔 연호였습니다. 또 세상을 떠난 왕후를 황후로 높이고, 왕태자를 황태자로 높였습니다.

배경즉위식 이틀 뒤인 10월 14일, 『독립신문』은 이렇게 썼습니다. 「광무 원년 10월 12일은 조선 역사에 몇만 년을 지나더라도 제일 빛나고 영화로운 날이 될지라.」 신문은 조선이 오랫동안 청의 속국처럼 대접받았던 일을 독자들에게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황제의 칭호를 쓰게 된 이날을 나라가 다른 나라와 대등한 자리에 선 순간으로 보았습니다. 지금 환구단의 본 제단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하지만 1899년에 지은 3층 팔각 건물 황궁우는 아직도 서울 도심의 한 호텔 옆에 남아 있습니다. 제단은 없어졌어도 그 곁에 세운 건물은 지금도 볼 수 있는 셈입니다.

광무개혁

1899년 8월 정부는 「대한국국제」를 반포했습니다. 대한제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밝힌 문서입니다. 짧은 이 문서는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이라고 밝히고, 나라의 거의 모든 권한을 황제의 손에 맡겼습니다. 이어서 광무라는 연호 아래 여러 개혁이 추진되었습니다. 전국의 땅을 다시 재어 조사하고 소유를 증명하는 관계(지계)를 발급하는 사업이 있었습니다. 산업과 상업을 일으키려는 정책도 펼쳤고, 서울에는 새 길을 내고 여러 시설을 들이는 도시 정비를 했습니다. 황실의 재정을 늘리고, 군을 총지휘하는 원수부를 만들어 군사력을 키우려 했습니다. 역사가들은 이것을 광무개혁이라 부릅니다. 광무라는 연호는 1897년부터 1907년까지 썼지만, 실제 개혁은 주로 1897년부터 1903년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연호가 쓰인 기간과 개혁이 실제로 진행된 기간은 같지 않습니다.

대한제국의 끝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04년부터 1905년까지 러시아와 싸워 이긴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을 강요했습니다. 일본은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일본인 통감을 두었습니다. 통감은 대한제국의 일을 감독하는 일본의 관리였습니다. 1907년에는 고종이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몰래 특사를 보낸 일을 구실로 삼아 고종을 강제로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새 협약을 맺어 정부의 각 부마다 일본인 차관을 앉혔습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했습니다. 나라 전체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입니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끝났고, 1392년에 시작된 왕조도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광무개혁이 실제로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 그리고 강대국들 사이에 끼인 대한제국이 스스로 움직일 여지가 과연 얼마나 있었는지는 지금도 역사가들 사이에 의견이 갈립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대한이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19년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를 세우면서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이라 했습니다. 오늘날의 나라도 같은 이름인 대한민국을 쓰고 있습니다. 1897년에 정한 대한이라는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 1895: 경복궁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됩니다.
  • 1896.2: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깁니다(아관파천).
  • 1897.2: 고종이 경운궁으로 돌아옵니다.
  • 1897.10: 고종이 황제에 오르고 대한제국을 선포합니다.
  • 1899.8: 「대한국국제」를 반포합니다.
  • 1905: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깁니다.
  • 1907: 고종이 강제로 물러납니다.
  • 1910.8: 일본에 국권을 빼앗깁니다.
대한제국1897년 10월 선포한 나라 이름
광무대한제국의 연호, 1897~1907
환구단고종이 하늘에 제사를 올린 제단
아관파천1896년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 피신
경운궁대한제국의 궁궐, 지금의 덕수궁
대한국국제1899년 황제권을 규정한 법
1910년국권 피탈, 왕조의 끝
핵심 정리
  • 명성황후 시해 뒤 고종은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습니다.
  • 1897년 10월 12일 환구단에서 황제에 오르고 대한제국을 선포했습니다.
  • 광무개혁에는 양전·지계 사업, 산업 진흥, 군사력 강화 등이 있었습니다.
  • 일본은 1905년부터 차례로 국권을 빼앗아 1910년 병합했습니다.
  1. 대한제국을 선포한 해는?
  2. 고종이 황제에 오른 곳은?
    • 환구단
    • 근정전
    • 러시아 공사관
    • 종묘
  3.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할 때 고종이 쓰던 연호는?
    • 광무
    • 건양
    • 융희
    • 대한
  4. 아관파천은 무엇인가요?
    •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일
    • 일본의 서울 공격
    • 새 법전
    • 헤이그 방문
  5. 고종이 황제의 궁궐로 쓴 곳은?
    • 경운궁(덕수궁)
    • 경복궁
    • 창덕궁
    • 화성
  6. 「대한국국제」를 반포한 해는?
  7. 고종이 황제를 칭한 까닭은?
    • 자주독립국이며 대등한 나라임을 보이려고
    • 청이 명령해서
    • 일본 제국에 들어가려고
    • 옛 궁궐이 불타서
  8. 광무 연호는 1897년부터 1907년까지 썼습니다. 몇 년 차이인가요?
  9. 1905년 을사늑약으로 빼앗긴 것은?
    • 외교권
    • 부산 항구만
    • 황제 칭호
    • 한글
  10. 조선 왕조는 1392년에 시작해 1910년에 끝났습니다. 몇 년인가요?
  11. 1919년 임시정부가 쓴 나라 이름은?
    • 대한민국
    • 조선
    • 고려
    • 한성
이 과정의 출처 (9)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한국사 연대기 조선·근대 (한양 천도, 경복궁, 한양도성, 훈민정음, 자격루, 임진왜란, 한산도 해전, 명량해전, 이순신, 실학, 북학의, 정약용, 척화비, 강화도 조약, 환구단)
  • 신편 한국사 22·23권 (태조 즉위의 승인과 국호개정, 문과·무과·잡과)
  • 우리역사넷 용어 (과거 제도, 상민, 목민심서)
  • 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과 좌절, 사료로 본 한국사 (정약용의 거중기, 강화도 조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노량해전, 명량대첩, 대동여지도, 열하일기, 박지원, 균전론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digital.khs.go.kr): 경복궁, 수원 화성
  • 국가유산청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heritage.go.kr): 훈민정음 해례본
  • 국립중앙박물관 대동여지도 전시 안내 (2026)
  • Lunar-calendar dates are given as recorded in the Annals.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