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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

격리를 뜻하는 영어 quarantine은 이탈리아어로 40을 뜻하는 quaranta에서 왔습니다. 흑사병 뒤 몇몇 항구가 여행자를 기다리게 한 날수입니다.

1 1338~1339년 묘비가 나온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 근처의 묘지, 2 킵차크 칸국의 중심인 볼가강 하류, 3 크림반도의 카파(1346년), 4 콘스탄티노폴리스(1347년), 5 메시나(1347년 10월), 6 마르세유, 7 피렌체, 8 파리(모두 1348년), 9 잉글랜드 남부의 멜컴(1348년), 10 지금의 두브로브니크인 라구사(1377년 격리법). 점선은 퍼진 길을 단순하게 그린 것이며 정확한 경로가 아닙니다. A 카스피해, B 흑해, C 지중해.

중앙아시아에서 온 병

흑사병은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라는 세균이 일으킨 페스트의 대유행입니다. 이 병은 1346년부터 1353년까지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페스트균은 마멋 같은 야생 설치류의 몸속에 살고, 그 설치류에 붙어 사는 벼룩이 물면 옮습니다. 이 병은 사람들 가까이에서 사는 쥐를 거쳐 사람에게 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폐에 감염되는 폐페스트가 되면, 기침할 때 튀는 침방울을 타고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바로 옮습니다. 흑사병이 처음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오랫동안 학자들 사이의 논쟁거리였습니다. 2022년 학술지 『네이처』에 연구를 발표한 한 연구진은, 지금의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 근처에 있는 카라지가치와 부라나 두 묘지에 묻힌 사람들에게서 페스트균 DNA를 찾아냈습니다. 이 묘지에 있는 1338년과 1339년의 묘비에는 사망 원인이 「역병」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옛 유전체는 흑사병과 이어지는 페스트균 계통들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나가는 바로 그 지점에 놓입니다. 그래서 이 연구는 흑사병이 중앙 유라시아의 이 지역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명을 뒷받침합니다. 시기로는 역병이 흑해에 닿기 8년쯤 전입니다.

카파에서 메시나로

1346년 무렵 페스트는 볼가강 하류의 킵차크 칸국과 흑해 연안에 닿았습니다. 그해 자니베크 칸은 카파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카파는 크림반도에 있던 제노바의 무역항으로, 지금의 페오도시야입니다. 피아첸차의 공증인 가브리엘레 데 무시는 나중에 이렇게 썼습니다. 역병으로 죽어 가던 포위군이 시신을 투석기에 얹어 성벽 너머로 던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데 무시는 그때 그 현장에 없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 쥐와 벼룩은 성벽쯤은 쉽게 넘나들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병이 정말 이런 식으로 도시에 들어갔는지 의심합니다. 병이 어떤 길로 들어갔든, 그 뒤에는 배가 페스트를 서쪽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병은 1347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닿았고, 1347년 10월에는 시칠리아의 메시나에 와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미켈레 다 피아차는 10년쯤 뒤에, 병이 제노바 갤리선 열두 척을 타고 왔다고 썼습니다. 병은 항구에 닿은 다음 길과 강을 따라 내륙 깊숙이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1348년에는 마르세유와 피렌체, 파리가 차례로 병에 휩쓸렸습니다.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페스트는 1348년에 잉글랜드 남부에 이르렀고, 1350년까지는 브리튼 북부와 스칸디나비아까지 퍼졌습니다.

얼마나 죽었나

그 무렵에는 죽은 사람을 제대로 센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역사가들은 남아 있는 세금 장부와 교회 기록, 장원 법정의 기록(4단원)을 바탕으로 추정합니다. 브리태니커는 1347년부터 1351년 사이에 유럽에서 약 2,500만 명이 죽었다고 추정합니다. 이 숫자는 흔히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라고 요약됩니다. 현대의 추정 가운데에는 이보다 높게, 절반이나 그 이상으로 보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피해의 크기는 곳에 따라 아주 크게 달랐습니다. 사람이 빽빽하게 모여 사는 도시에서는 주민의 절반이 죽는 일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의 첫머리에서 1348년 피렌체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습니다. 이웃들은 병자를 찾아가지 않게 되었고, 어떤 부모는 자식을 버렸습니다. 교회 묘지가 가득 차자 사람들은 시신을 큰 구덩이에 넣고, 배에 짐을 싣듯 겹겹이 쌓아 묻었습니다. 페스트는 그 뒤 몇백 년 동안 10~20년마다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인구가 회복되는 데에는 10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한 일과 바뀐 것

그 시대의 의사들은 「미아스마」라는 나쁜 공기나 별의 움직임을 병의 원인으로 탓했습니다. 1348년 파리 대학 의학부는 1345년에 토성, 목성, 화성이 한자리에 모인 일을 원인으로 들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채찍질 고행단」의 행렬에 끼는 이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 앞에서 제 몸을 채찍질하며 공개적으로 참회했습니다. 라인란트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많은 도시에서는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거짓 누명을 쓰고 학살당했습니다. 교황 클레멘스 6세가 1348년에 여러 차례 교서를 내어 이 누명을 물리쳤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편 도시들은 현실적인 대책도 여러 가지 찾아 나섰습니다. 1377년 7월 27일 라구사(두브로브니크)의 대평의회는, 역병이 도는 지역에서 온 사람은 30일 동안 따로 떨어져 지낸 뒤에야 도시에 들어올 수 있다고 정했습니다. 그 뒤 수십 년 사이에 이 기간이 40일로 늘었고, 이것이 「쿼런틴」(격리)입니다. 길게 보면 일할 사람이 크게 줄어든 결과, 살아남은 농민들은 더 높은 품삯과 더 나은 조건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잉글랜드는 노동자 칙령(1349년)과 노동자 조례(1351년)를 내어 품삯을 예전 수준에 묶어 두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치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쌓여 1381년의 농민 반란으로 이어졌습니다.

배경보카치오는 자기의 가장 유명한 책을 역병이라는 바탕 위에 세웠습니다. 『데카메론』에서는 1348년,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젊은 여성 일곱 명과 젊은 남성 세 명이 만납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도시를 떠나 언덕 위의 별장으로 피하기로 합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시간을 보내려고, 이들은 저마다 하루에 이야기 하나씩을 하기로 정합니다. 열 사람이 열흘 동안 이야기하면 이야기는 모두 백 편이 됩니다. 상인과 사제, 연인과 사기꾼이 나오는 이 이야기들은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꽤 짓궂은 것도 많습니다. 이야기를 감싼 바깥 틀은 음울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대부분 그런 가운데에도 이어지는 평범한 삶을 다룹니다. 이 책이 그토록 널리 읽혔고 지금도 출간되는 까닭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페스트는 지금도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 일부 지역의 야생 설치류 사이에 남아 있으며, 오늘날에는 항생제로 치료합니다. 이 단원은 역사를 다루는 내용이며, 의료에 관한 조언이 아닙니다.
  • 1338년: 이식쿨 호수 근처의 「역병」 묘비(1338~1339년)
  • 1345년: 파리 의사들이 나중에 원인으로 든 행성 회합
  • 1346년: 카파와 볼가강 하류에 페스트
  • 1347년: 콘스탄티노폴리스, 10월 메시나
  • 1348년: 피렌체, 마르세유, 파리, 잉글랜드 남부
  • 1349년: 잉글랜드 노동자 칙령
  • 1350년: 브리튼 북부와 스칸디나비아에 이름
  • 1351년: 노동자 조례
  • 1377년: 7월 27일 라구사, 30일 격리를 정함
  • 1381년: 잉글랜드 농민 반란
예르시니아 페스티스페스트를 일으키는 세균
림프절 페스트벼룩에 물려 옮고 림프절이 붓는 형태
폐페스트기침으로 사람 사이에 옮는 폐 감염 형태
카파1346년에 포위된 크림반도의 제노바 항구
미아스마병의 원인으로 여긴 중세의 「나쁜 공기」
채찍질 고행단행렬하며 제 몸을 채찍질한 참회자들
쿼런틴(격리)「40일」을 뜻하는 quaranta에서 온 말
노동자 조례1351년 품삯을 묶어 두려 한 잉글랜드 법
  1. 페스트의 원인은?
    •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라는 세균
    • 나쁜 공기
    • 행성의 회합
  2. 2022년 DNA 연구가 흑사병 계통의 초기 희생자를 찾은 곳은?
    •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 근처
    • 카파
    • 메시나
  3. 1347년 10월 페스트가 닿은 시칠리아의 항구는?
    • 메시나
    • 팔레르모
    • 시라쿠사
  4. 1348년 파리 대학 의학부가 원인으로 든 것은?
    • 토성·목성·화성의 회합
    • 쥐벼룩
    • 물속 세균
  5. 흑사병 뒤 품삯이 오른 까닭은?
    • 일할 사람이 크게 줄어서
    • 금광이 발견되어서
    • 왕이 품삯을 올리라고 해서
  6. 라구사가 1377년에 정한 것은?
    • 역병 지역에서 온 사람의 30일 격리
    • 항구를 영원히 폐쇄
    • 외국 배를 모두 불태움
  7. 『데카메론』의 바깥 이야기는?
    • 역병을 피한 젊은이 열 명이 이야기 100편을 함
    • 의사의 역병 일기
    • 역병에 맞선 왕의 법
  8. 라구사는 처음에 30일을 정했고 나중 규칙은 40일이었습니다. 며칠 늘었을까요?
  9. 인구 12,000명인 도시가 역병으로 3분의 1을 잃었습니다. 몇 명이 죽었을까요?
  10. 일어난 순서대로 놓으세요(이른 것부터).
출처: 스피루 외 「14세기 중앙 유라시아에서 시작된 흑사병」, 『네이처』 606호(2022); 브리태니커 「흑사병」(1347~1351년 유럽 사망자 약 2,500만 명);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신종 감염병』 「어원: 쿼런틴」(2013), 「격리의 역사에서 얻는 교훈」(2013); 『신종 감염병』 「두브로브니크의 옛 항구」(2002, 1377년 7월 27일 법령); 보카치오 『데카메론』 첫째 날 머리말.
이 과정의 출처 (9)
  • The Met Heilbrunn Timeline essay "The Byzantine State under Justinian I" (metmuseum.org/essays) and Met object 1993.256, Safe Conduct Pass (Paiza) in Phags-pa script
  • British Museum, "The Anglo-Saxon ship burial at Sutton Hoo" and "The Bayeux Tapestry" exhibition page (britishmuseum.org)
  • The National Archives, "Domesday Book" research guide (nationalarchives.gov.uk)
  • Britannica: "Black Death", "Mongol empire", "Genghis Khan", "Battle of Hattin"
  • Spyrou et al., "The source of the Black Death in fourteenth-century central Eurasia", Nature 606 (2022)
  • CDC Emerging Infectious Diseases, "Etymologia: Quarantine" (2013) and "Lessons from the History of Quarantine" (2013)
  • Library of Congress, The Canon of Medicine record (loc.gov/item/2021667335)
  • Fordham University Internet Medieval Sourcebook, "Urban II: Speech at Council of Clermont, 1095"
  • Natural Earth coastlines (public domain).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