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bun
한국어

몽골 제국

몽골 제국은 가장 넓을 때 태평양에서 도나우강까지 약 2,300만 제곱킬로미터를 차지했습니다. 역사상 땅이 하나로 이어진 제국 가운데 가장 큽니다.

1 초원의 몽골 수도 카라코룸, 2 중도(뒷날의 대도, 지금의 베이징), 3 사마르칸트, 4 바그다드(1258년 약탈), 5 키이우(1240년), 6 레그니차와 7 모히(둘 다 1241년 4월), 8 아인잘루트(1260년), 9 남송의 수도 항저우, 10 일본의 하카타만(1274년, 1281년). A 카스피해, B 타림 분지와 타클라마칸 사막, C 동중국해.

테무진, 칭기즈 칸이 되다

테무진은 중국 북쪽에 펼쳐진 몽골 초원에서 태어났습니다. 브리태니커는 그가 태어난 해를 1162년으로 보지만, 다른 해를 내세우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테무진이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가 독살되었고, 그러자 그의 집안은 따르던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습니다. 테무진은 수십 년 동안 약탈과 동맹과 배신을 거듭하며 초원의 부족들을 하나씩 자기 지배 아래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1206년 「쿠릴타이」라는 큰 회의가 그를 칭기즈 칸으로 추대했습니다. 이 이름은 영어로 흔히 Genghis라고 적습니다. 칭기즈 칸은 군대를 10명, 100명, 1,000명, 1만 명 단위로 짰고, 그 가운데 가장 큰 1만 명 단위를 「투멘」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옛 부족 집단을 흩어 놓아서, 병사들이 부족장이 아니라 자기 지휘관과 칭기즈 칸에게 충성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군대 안에서의 승진은 출신보다 충성과 능력에 크게 달려 있었습니다. 몽골 병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말을 탄 궁수였고, 저마다 여분의 말을 여러 마리 끌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몽골 군대는 먼 거리를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고, 아직 멀리 있다고 여기던 적을 갑자기 덮칠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유럽까지

칭기즈 칸은 중국 북부의 금나라를 쳤고, 1215년에는 금나라의 수도 중도를 차지했습니다. 중도는 지금의 베이징입니다. 중앙아시아와 이란에는 호라즘이라는 큰 나라가 있었는데, 이 나라를 다스리던 샤가 몽골의 대상과 사절을 죽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칭기즈 칸은 1219년부터 1221년 사이에 호라즘 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부하라와 사마르칸트가 함락되었고, 저항한 도시 가운데 몇 곳은 아예 사라져 버렸습니다. 칭기즈 칸은 1227년 8월 18일, 탕구트족의 나라 서하를 치는 원정 중에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뒤에는 그의 아들과 손자들이 정복을 계속 이어 갔습니다. 몽골 군대는 1240년에 키이우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1241년 4월에는 이틀 사이를 두고 두 번의 싸움에서 이겼는데, 하나는 폴란드의 레그니차에서, 다른 하나는 헝가리의 모히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몽골 군대는 더 나아가지 않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1241년 12월에 대칸 오고타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왔기 때문이었을 수 있습니다. 1258년에는 칭기즈 칸의 손자 훌레구가 바그다드를 약탈하고, 그곳에 있던 마지막 아바스 왕조 칼리파를 처형했습니다. 1260년에는 이집트의 맘루크 군대가 팔레스타인의 아인잘루트에서 몽골군을 무찔렀습니다. 이 싸움은 서쪽에서 몽골이 처음으로 크게 진 싸움이었습니다.

쿠빌라이 칸과 네 칸국

1260년대에 이르자 제국은 네 개의 칸국으로 갈라졌습니다. 첫째는 러시아 초원의 킵차크 칸국(금장 칸국)이고, 둘째는 중앙아시아의 차가타이 칸국입니다. 셋째는 이란의 일 칸국이고, 넷째는 몽골과 중국에 걸쳐 있던 대칸 자신의 나라입니다. 칭기즈 칸의 또 다른 손자 쿠빌라이는 1271년부터 중국식 나라 이름인 「원」을 썼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베이징 자리에 새 수도 대도를 지었습니다. 1279년에는 쿠빌라이의 군대가 중국 남부를 다스리던 송나라, 다시 말해 남송의 정복을 마쳤습니다. 이로써 몇백 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전체가 한 지배자 아래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원정은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 함대는 태풍을 만나 부서졌고, 일본 사람들은 이 태풍을 「가미카제」(신의 바람)라는 이름으로 기억했습니다. 두 함대의 배와 뱃사람은 상당수가 고려에서 나왔습니다. 고려는 수십 년 동안 몽골에 맞서 싸우다가 끝내 굴복한 나라였습니다.

역참과 통행패

몽골의 정복은 끔찍하게 파괴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번 손에 넣은 지역에서 칸들이 바란 것은 교역과 세금이었습니다. 몽골은 「잠」이라는 역참망을 두었습니다. 역참에서는 나라의 일로 달리는 기수들이 말을 갈아타고 먹고 쉴 수 있었습니다. 이 역참망 덕분에 나라의 명령과 여러 소식이 예전보다 훨씬 빨리 제국을 가로질렀습니다. 나랏일로 길을 다니는 사람은 「파이자」(패자)라는 금속 패를 지녔습니다. 이 패에는 지방 관리들에게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내주라는 명령이 담겨 있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쇠로 만들고 은을 박아 넣은 파이자가 하나 있는데, 13세기 말의 것으로 봅니다. 이 패의 겉면에는 파스파 문자로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파스파 문자는 쿠빌라이가 제국의 여러 언어를 적으려고 만들게 한 글자입니다. 상인과 선교사, 사절들은 예전보다 안전하게 아시아를 건너다녔습니다. 뒷날 역사가들은 이런 상황을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다시 말해 「몽골의 평화」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여행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베네치아의 마르코 폴로입니다. 그는 쿠빌라이를 17년쯤 섬겼다고 말했는데, 그의 이야기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진위를 두고 논쟁이 이어집니다. 같은 길은 뒷날 역병을 실어 나르는 데에도 한몫했습니다(7단원).

배경1254년, 플랑드르 출신의 수도사 루브룩의 기욤이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사절로 몽골의 수도 카라코룸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긴 보고서를 썼는데, 그 보고서에서 가장 신기한 장면 가운데 하나는 대칸 몽케의 궁전에서 펼쳐집니다. 파리 출신의 금세공인 기욤 부셰는 몇 해 전 헝가리에서 포로로 잡혀 온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궁전 입구에 은으로 된 나무 한 그루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나무줄기 속으로 관 네 개가 올라가 있었고, 관 끝은 금박을 입힌 뱀들의 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나무 꼭대기에는 나팔을 든 천사가 서 있었습니다. 나무 안에 숨어 있던 하인이 나팔을 불면, 관에서 포도주와 말젖술, 꿀술, 쌀술이 아래에 놓인 그릇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루브룩은 카라코룸에서 헝가리 사람, 러시아 사람, 독일 사람을 만났고, 메스에서 온 여인까지 만났습니다. 몽골의 정복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먼 곳으로 옮겨 놓았는지 보여 주는 일입니다.
몽골의 원정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다만 중세 연대기 작가들이 적은 숫자는 도시 하나에 수십만 명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숫자는 확인할 길이 없고 대개 부풀려졌다고 봅니다.
  • 1162년: 테무진 출생(브리태니커 기준, 다른 설도 있음)
  • 1206년: 쿠릴타이, 그를 칭기즈 칸으로 추대
  • 1215년: 중도(베이징) 함락
  • 1219년: 호라즘 원정 시작(1221년까지)
  • 1227년: 8월 18일 칭기즈 칸 사망
  • 1240년: 키이우 함락
  • 1241년: 레그니차와 모히 전투. 오고타이 사망
  • 1254년: 루브룩의 기욤, 카라코룸 방문
  • 1258년: 훌레구, 바그다드 약탈
  • 1260년: 맘루크, 아인잘루트에서 승리
  • 1271년: 쿠빌라이, 나라 이름을 원으로 정함
  • 1279년: 남송 정복 완료
  • 1281년: 두 번째 일본 원정, 태풍으로 실패
쿠릴타이몽골 지도자들의 큰 회의
투멘1만 명 단위의 군대
킵차크 칸국(금장 칸국)러시아 초원의 칸국
일 칸국훌레구가 세운 이란의 칸국
원쿠빌라이가 1271년에 정한 나라 이름
잠(역참)관리 기수를 위한 역참망
파이자(패자)지닌 사람에게 물자를 대라고 명하는 금속 패
팍스 몽골리카몽골 지배 아래 안전해진 아시아 교역
  1. 테무진이 칭기즈 칸으로 추대된 해는?
    • 1206년
    • 1162년
    • 1227년
  2. 「잠」은 무엇이었나요?
    • 역참망
    • 펠트 천막
    • 교역세
  3. 파이자는 무엇이었나요?
    • 나랏일로 다니는 사람의 금속 통행패
    • 금화
    • 합성궁
  4. 1258년 바그다드를 약탈한 사람은?
    • 훌레구
    • 쿠빌라이
    • 오고타이
  5. 1260년 몽골이 진 곳은?
    • 아인잘루트, 맘루크에게
    • 모히, 헝가리에게
    • 레그니차, 폴란드에게
  6. 쿠빌라이가 1271년에 정한 나라 이름은?
    • 원
    • 송
    • 금
  7. 1281년 일본으로 보낸 두 번째 원정 함대는 어떻게 되었나요?
    • 태풍에 부서짐
    • 규슈를 정복함
    • 돌아가서 고려를 침
  8. 군대는 10, 100, 1,000, 10,000명 단위로 짰습니다. 100명 단위 몇 개가 투멘 하나가 될까요?
  9. 브리태니커의 출생 연도 1162년을 쓰면, 1206년 칸으로 추대될 때 테무진은 대략 몇 살이었을까요?
  10. 일어난 순서대로 놓으세요(이른 것부터).
출처: 브리태니커 「몽골 제국」(면적 약 2,300만 km²), 「칭기즈 칸」(1162년 출생, 1227년 8월 18일 사망);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품 1993.256 「파스파 문자를 새긴 통행패(파이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하일브런 연표 에세이 「칭기즈 칸의 유산」; 루브룩의 기욤 『수도사 루브룩의 기욤의 사행기』(P. 잭슨 옮김, 1990).
이 과정의 출처 (9)
  • The Met Heilbrunn Timeline essay "The Byzantine State under Justinian I" (metmuseum.org/essays) and Met object 1993.256, Safe Conduct Pass (Paiza) in Phags-pa script
  • British Museum, "The Anglo-Saxon ship burial at Sutton Hoo" and "The Bayeux Tapestry" exhibition page (britishmuseum.org)
  • The National Archives, "Domesday Book" research guide (nationalarchives.gov.uk)
  • Britannica: "Black Death", "Mongol empire", "Genghis Khan", "Battle of Hattin"
  • Spyrou et al., "The source of the Black Death in fourteenth-century central Eurasia", Nature 606 (2022)
  • CDC Emerging Infectious Diseases, "Etymologia: Quarantine" (2013) and "Lessons from the History of Quarantine" (2013)
  • Library of Congress, The Canon of Medicine record (loc.gov/item/2021667335)
  • Fordham University Internet Medieval Sourcebook, "Urban II: Speech at Council of Clermont, 1095"
  • Natural Earth coastlines (public domain).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