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마 제국의 멸망, 476년
476년 9월 4일, 오도아케르라는 장군이 어린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물러나게 하고는 새 황제를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두 개의 제국
4세기 후반 로마 제국은 보통 동쪽과 서쪽에 황제를 하나씩 두고, 저마다 궁정과 군대를 거느렸습니다. 한 사람이 넓은 제국 전체를 다스리기는 어려웠던 것입니다.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자 제국은 어린 두 아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아르카디우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호노리우스는 서쪽에서 다스렸고, 그 뒤 제국은 다시는 한 곳에서 다스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동로마와 서로마는 따로 걸어가게 됩니다. 동쪽은 더 부유하고 도시가 많았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벽과 바다 덕분에 공격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서쪽은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따라 긴 육지 국경을 지켜야 했고 세금을 걷을 바탕도 더 작았습니다. 지킬 곳은 많은데 쓸 돈은 적었던 것입니다. 402년 호노리우스는 아드리아해 해안의 늪지 뒤에 있는 라벤나로 궁정을 옮겼습니다. 늪지가 둘러싸고 있어 적이 쉽게 다가올 수 없는 도시였습니다.
고트족, 훈족, 반달족
문제는 멀리 동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376년 무렵 훈족을 피해 달아나던 고트족이 도나우강을 건너 로마 땅에 들어오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들은 들어오기는 했지만 푸대접을 받았고, 결국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피난민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로마와 맞서게 된 것입니다. 378년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그들은 동로마군을 무너뜨리고 발렌스 황제를 죽였습니다. 로마 황제가 싸움터에서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그 뒤로 고트족과 다른 무리들은 제국 안에서 동맹이자 경쟁자로, 때로는 지배자로 살았습니다. 제국의 바깥 사람이 제국 안의 큰 세력이 된 것입니다. 410년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이 사흘 동안 로마를 약탈했습니다. 기원전 약 387년 갈리아인에게 함락된 뒤 처음으로 로마가 적에게 넘어간 일이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재앙을 그리스도교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에게 답하려는 뜻도 담아 『신국론』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로마가 무너진 까닭을 두고 그때도 사람들의 생각이 갈렸던 것입니다. 439년 반달족이 카르타고를 차지하면서 서로마는 아프리카의 곡물과 세금을 잃었습니다. 서로마가 먹고살 곡식과 나라 살림의 큰 몫을 잃은 것입니다. 그리고 455년 반달족은 2주 동안 로마를 약탈했습니다.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은 갈리아로 쳐들어왔다가 451년에 저지되었고, 아틸라는 2년 뒤 죽었습니다. 서로마는 이렇게 사방에서 압박을 받았습니다.
476년
470년대에 이르러 서로마 황제는 대부분 게르만계인 군 사령관들의 꼭두각시였습니다. 475년 장군 오레스테스는 어린 아들 로물루스를 황제 자리에 앉혔고, 사람들은 그를 「작은 아우구스투스」라는 뜻의 아우구스툴루스라고 불렀습니다.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와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한 몸에 지닌 소년이었습니다. 이듬해 게르만계 병사들을 이끌던 장교 오도아케르가 오레스테스를 죽이고 476년 9월 4일 로물루스를 물러나게 했습니다. 뒷날의 연대기에 따르면 오도아케르는 소년을 살려 주고 연금을 주어 캄파니아에서 살게 했습니다. 물러난 소년 황제는 목숨을 잃지 않고 조용히 살게 된 것입니다. 오도아케르는 새 황제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서쪽에는 이제 로마 황제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는 왕으로서 이탈리아를 다스리며 원로원과 로마식 행정을 그대로 두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제논 황제를 겉으로만 섬겼습니다. 493년 제논의 편에 선 동고트족 테오도리크가 오도아케르를 죽이고 이탈리아를 차지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주인이 다시 한번 바뀐 것입니다.
멸망인가, 변화인가
476년에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해가 전환점이 된 것은 뒷날 역사가들이 되돌아보면서였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생활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았습니다. 동쪽의 로마 제국은 1453년 오스만 튀르크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차지할 때까지 천 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뒷시기를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부르지만, 그곳 사람들은 스스로를 로마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동쪽 사람들에게 로마 제국은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1776년부터 1789년까지 나온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는 그리스도교의 확산과 시민 정신의 쇠퇴를 원인의 하나로 꼽았습니다. 20세기에 피터 브라운 같은 역사가는 갑작스러운 붕괴 대신 오래 이어진 「고대 후기」의 변화를 그려 냈습니다. 무너졌다기보다 모습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자 브라이언 워드퍼킨스 같은 학자들은 땅에서 나온 증거를 보면 서쪽의 생활 수준이 실제로 떨어졌다고 반박했습니다. 동전이 줄고, 토기가 조악해지고, 건물이 작아지고, 소의 몸집까지 작아졌다는 것입니다. 로마시의 인구도 몇십만 명에서 그 몇 분의 1로 줄었습니다. 무너짐이 실제로 있었는지, 변화였는지를 두고 지금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378년: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 발렌스 전사
-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 죽음, 동서가 영영 갈라짐
- 410년: 서고트족, 로마 약탈
- 439년: 반달족, 카르타고 점령
- 451년: 아틸라, 갈리아에서 저지됨
- 455년: 반달족, 로마 약탈
- 476년: 오도아케르,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폐위
- 1453년: 오스만, 콘스탄티노폴리스 점령
| 아드리아노폴리스 | 378년 고트족이 발렌스 황제를 죽인 전투 |
| 알라리크 | 410년 로마를 약탈한 서고트 지도자 |
| 반달족 | 439년 카르타고 점령, 455년 로마 약탈 |
| 라벤나 | 402년부터 서로마 궁정이 있던 도시 |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 476년 폐위된 마지막 서로마 황제 |
| 오도아케르 | 476년 이탈리아 왕이 된 사령관 |
| 비잔티움 제국 | 1453년까지 이어진 동로마 제국의 현대식 이름 |
| 고대 후기 | 이 시기를 갑작스러운 붕괴가 아닌 긴 변화로 보는 시각 |
- 378년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발렌스 황제를 죽인 것은?
- 고트족
- 훈족
- 페르시아
-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은 뒤 제국은?
- 다시는 한 곳에서 다스려지지 않음
- 한 황제 아래 다시 합쳐짐
- 공화정이 됨
- 410년 로마를 약탈한 것은?
- 알라리크가 이끈 서고트족
- 반달족
- 아틸라의 훈족
- 439년 카르타고를 잃은 것이 서로마에 큰 타격이었던 까닭은?
- 아프리카가 곡물과 세금을 대 주었기 때문에
- 서로마의 수도였기 때문에
- 함대를 그곳에서 지었기 때문에
- 오도아케르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물러나게 한 뒤 무엇을 했나요?
- 서로마 황제 없이 왕으로 이탈리아를 다스림
- 스스로 황제가 됨
- 이탈리아를 훈족에게 넘김
- 동로마 제국은 언제까지 이어졌나요?
- 1453년
- 476년
- 800년
- 브라이언 워드퍼킨스가 실제 쇠퇴의 근거로 든 증거는?
- 고고학 증거: 동전, 토기, 건물, 소
- 기번의 책뿐
- 교회 설교
- 로마는 410년과 455년에 약탈당했습니다. 몇 년 차이일까요?
- 476년부터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까지 몇 년일까요?
-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27년에 칭호를 받았고 마지막 서로마 황제는 476년에 물러났습니다. 몇 년일까요? (0년 없음)
- 오래된 것부터 순서대로 놓으세요.
이 과정의 출처 (13)
- The Met Heilbrunn Timeline essays "The Roman Republic" and "The Roman Empire (27 B.C. to 393 A.D.)" (metmuseum.org/essays)
- British Museum collection records (Vindolanda birthday invitation, ostraka, Ilam pan)
- Britannica: "The reforms of Cleisthenes", "Cleisthenes of Athens", "Greco-Persian Wars", "Delian League"
- Hellenic Ministry of Culture exhibition "2500 years: The Battle of Marathon" (2500years.culture.gov.gr)
- English Heritage: "History of Hadrian's Wall" and "Hadrian's Wall facts and FAQs" (english-heritage.org.uk)
- MIT News 2023 "Riddle solved: Why was Roman concrete so durable?" and Seymour, Masic et al., Science Advances 2023 (doi 10.1126/sciadv.add1602)
- MIT DMSE 2025 on the Pompeii building site
- University of Chicago LacusCurtius: "The Life and Works of Frontinus" and Encyclopaedia Romana "Frontinus and the Quinaria" (penelope.uchicago.edu)
- Brown University Joukowsky Institute course notes "Delian League"
- Lumen Learning / SUNY world history "Odoacer and the Fall of Rome"
- Livius.org "Royal Road"
- EBSCO Research Starters "Legislation of Solon". Map coastlines: Natural Earth 1:110m (public domain)
- routes are hand-placed approximations.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