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민주정
정치인을 10년 동안 내보내려면 아테네 시민은 깨진 그릇 조각에 그 이름을 긁어 썼습니다. 투표는 6,000표 이상 모여야 효력이 있었습니다.
빚과 법, 그리고 입법자
기원전 약 600년의 아테네는 내전 직전이었습니다. 빚을 진 작은 농부는 노예로 팔릴 수 있었고, 몇몇 귀족 가문이 권력을 거의 다 쥐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힘 있는 가문 사이의 갈등이 커질 대로 커진 것입니다. 기원전 약 621년에 드라콘이 만든 첫 성문법은 어찌나 가혹했던지, 지금도 영어 draconian은 「가혹한」이라는 뜻입니다. 기원전 약 594년, 아테네 사람들은 솔론이라는 귀족에게 도시를 개혁할 특별한 권한을 주었습니다. 솔론은 자기 몸을 담보로 잡힌 빚을 없애 다시는 아테네 사람이 빚 때문에 노예가 되지 않게 했고, 시민을 수확량에 따라 네 계급으로 나누었습니다. 가장 부유한 계급만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지만, 가장 가난한 시민도 민회에는 나갈 수 있었습니다. 나랏일에 참여하는 문이 가난한 시민에게도 조금 열린 것입니다. 솔론은 자기 개혁을 「짐 털어 내기」라고 불렀습니다. 무거운 짐처럼 시민을 누르던 빚을 털어 냈다는 뜻입니다.
클레이스테네스가 도시를 다시 짜다
솔론의 개혁으로도 다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6세기 후반의 상당 기간은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와 그 아들들이 아테네를 다스렸고, 마지막 아들 히피아스는 기원전 510년에야 쫓겨났습니다. 기원전 508~507년, 클레이스테네스라는 귀족이 평민 편에 서서 더 깊은 개혁을 밀어붙였습니다. 브리태니커는 그의 기본 개혁을 시민 전체를 열 개의 새 부족으로 다시 짠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부족마다 도시, 해안, 내륙 언덕 마을을 한 조각씩 섞어 넣었습니다. 한 부족 안에 여러 지역 사람이 섞이도록 한 것입니다. 각 부족은 제비뽑기로 50명씩 뽑아 새로 만든 500인 평의회로 보냈고, 평의회는 민회에 올릴 안건을 정리했습니다. 이제 정치적인 소속은 가문이 아니라 자기 마을인 「데모스」에서 나왔습니다. 어느 가문 출신이냐보다 어느 마을에 사느냐가 더 중요해진 것입니다.
제도는 어떻게 돌아갔나
민회는 프닉스라는 언덕 비탈에서 열렸고, 성인 남성 시민이라면 누구나 발언하고 투표할 수 있었습니다. 투표는 보통 손을 들어 했습니다. 민회는 전쟁과 평화를 정하고, 법령을 통과시키고, 장군을 뽑았습니다. 장군은 기술이 필요한 자리라서 선거로 뽑았습니다. 아무나 맡을 수 없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관직은 대부분 제비뽑기로 1년씩 맡겼는데, 어떤 시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같은 자리를 오래 차지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재판에는 전문 판사 없이 제비로 뽑은 대규모 배심원단이 나섰고, 몇백 명인 경우가 흔했습니다. 기원전 450년대에 페리클레스는 가난한 시민도 배심원을 할 수 있도록 하루 2오볼로스의 수당을 만들었고, 수당은 나중에 3오볼로스로 올랐습니다. 기원전 451년의 법은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도 아테네 사람이어야 시민이 될 수 있게 했습니다. 시민이 되는 문이 그만큼 더 좁아진 것입니다.
도편 추방
도편 추방은 누군가를 멀리 보내는 투표였습니다. 해마다 한 번 민회가 추방 투표를 열지 말지를 정했습니다. 열기로 하면 시민들이 아고라의 울타리 친 구역에 모여, 저마다 「오스트라콘」이라는 깨진 그릇 조각에 이름을 긁어 썼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투표한 수가 6,000표 이상이어야 효력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은 10년 동안 아티카를 떠나야 했지만 재산은 그대로 지켰고, 돌아오면 권리도 모두 되찾았습니다. 벌을 주는 것이라기보다 잠시 멀리 떼어 놓는 제도였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오스트라콘을 몇천 개나 찾아냈습니다. 그 조각들에는 실제로 투표한 사람들의 손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의 이름을 적은 조각 약 190개가 한 무더기로 아크로폴리스 북쪽 비탈의 우물에서 나왔습니다. 1938년 이를 발표한 오스카 브로니어는 글씨체가 14가지뿐이라는 것을 밝혔고, 그래서 투표자에게 나눠 주려고 미리 써 둔 것으로 봅니다. 누군가 미리 이름을 써 둔 조각을 나눠 주었다면, 투표가 늘 공정하지만은 않았던 셈입니다.
누가 빠져 있었나
아테네 민주정은 직접 민주정이었지만 범위가 좁았습니다. 시민이 직접 나랏일을 정했지만, 그 시민에 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여성과 노예, 「메토이코이」라고 부른 거주 외국인은 투표할 수 없었고, 노예는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4세기의 성인 남성 시민을 약 3만 명으로 봅니다. 플라톤을 비롯한 당대의 비판자들은 다수의 지배가 무지한 사람들의 지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평범한 시민이 돌아가며 다스리고 재판한다는 아테네의 생각은 그 뒤 2,500년 동안 따라 하고, 논쟁하고, 되살리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도 이 오랜 논쟁 위에 서 있습니다.
- 기원전 약 621년: 드라콘, 아테네 첫 성문법 제정
- 기원전 약 594년: 솔론, 빚 노예 폐지
- 기원전 510년: 마지막 참주 히피아스 추방
-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 열 개 부족과 500인 평의회
- 기원전 482년: 아리스테이데스 도편 추방
- 기원전 451년: 시민권법, 부모 모두 아테네인이어야 함
| 솔론 | 기원전 약 594년에 빚 노예를 없앤 입법자 |
| 클레이스테네스 | 기원전 508년의 개혁가, 열 개 부족과 500인 평의회 |
| 데모스 | 마을 또는 구역, 시민 신분의 바탕 |
| 프닉스 | 민회가 열린 언덕 |
| 오스트라콘 | 투표용지로 쓴 그릇 조각 |
| 메토이코이 | 아테네에 사는 자유민 외국인, 투표권 없음 |
| 오볼로스 | 작은 은화, 6개가 1드라크마 |
- 솔론이 없앤 것은?
- 빚 때문에 노예가 되는 일
- 민회
- 동전
- 아테네 관리는 대부분 어떻게 뽑았나요?
- 제비뽑기
- 세습
- 왕의 임명
- 장군을 제비가 아니라 선거로 뽑은 까닭은?
- 기술이 필요한 자리라서
- 사제였기 때문에
- 스파르타가 요구해서
- 오스트라콘은 무엇이었나요?
- 투표에 쓴 그릇 조각
- 은화
- 밀랍판
- 도편 추방된 사람의 재산은?
- 그대로 지켰다
- 도시가 몰수했다
- 경쟁자에게 넘어갔다
- 아테네에서 투표할 수 없었던 사람은?
- 여성, 노예, 거주 외국인
- 가난한 남성 시민
- 해안 마을 농부
- 페리클레스가 배심원 수당을 만든 까닭은?
- 가난한 시민도 배심원을 할 수 있게
- 병사에게 상을 주려고
- 함대 비용을 대려고
- 부족 10개가 각각 평의원 50명을 보냈습니다. 평의회는 몇 명이었을까요?
- 6오볼로스가 1드라크마입니다. 하루 3오볼로스라면 배심원을 며칠 해야 1드라크마를 벌까요?
- 솔론의 개혁은 기원전 약 594년,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은 기원전 508년입니다. 몇 년 차이일까요?
- 오래된 것부터 순서대로 놓으세요.
이 과정의 출처 (13)
- The Met Heilbrunn Timeline essays "The Roman Republic" and "The Roman Empire (27 B.C. to 393 A.D.)" (metmuseum.org/essays)
- British Museum collection records (Vindolanda birthday invitation, ostraka, Ilam pan)
- Britannica: "The reforms of Cleisthenes", "Cleisthenes of Athens", "Greco-Persian Wars", "Delian League"
- Hellenic Ministry of Culture exhibition "2500 years: The Battle of Marathon" (2500years.culture.gov.gr)
- English Heritage: "History of Hadrian's Wall" and "Hadrian's Wall facts and FAQs" (english-heritage.org.uk)
- MIT News 2023 "Riddle solved: Why was Roman concrete so durable?" and Seymour, Masic et al., Science Advances 2023 (doi 10.1126/sciadv.add1602)
- MIT DMSE 2025 on the Pompeii building site
- University of Chicago LacusCurtius: "The Life and Works of Frontinus" and Encyclopaedia Romana "Frontinus and the Quinaria" (penelope.uchicago.edu)
- Brown University Joukowsky Institute course notes "Delian League"
- Lumen Learning / SUNY world history "Odoacer and the Fall of Rome"
- Livius.org "Royal Road"
- EBSCO Research Starters "Legislation of Solon". Map coastlines: Natural Earth 1:110m (public domain)
- routes are hand-placed approximations.
확인한 날: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