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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하드리아누스 방벽은 브리타니아 북부를 가로질러 80로마마일, 지금 단위로 73마일을 뻗었고, 세 대륙에서 온 병사들이 지켰습니다.

트라야누스 때 가장 넓었던 117년 무렵 제국의 주요 장소. 1 로마, 2 브리타니아 북부(하드리아누스 방벽은 122년에 착공), 3 론디니움(런던), 4 루그두눔(리옹), 5 카르타고, 6 알렉산드리아, 7 안티오키아, 8 비잔티온(뒷날 콘스탄티노폴리스), 9 101~106년에 정복한 다키아. A 지중해, B 흑해, C 대서양. 국경은 자주 바뀌어서 그리지 않았습니다.

황제라고 말하지 않은 황제, 아우구스투스

악티움 이후 옥타비아누스는 실권을 모두 쥐었지만, 카이사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혼자 권력을 쥐었다가 살해된 카이사르처럼 되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기원전 27년 그는 권력을 원로원에 돌려주는 모양새를 갖추었고, 원로원은 그에게 「존엄한 자」라는 뜻의 명예 칭호 아우구스투스를 바쳤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해를 제국의 시작으로 봅니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넘어간 해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제1시민」이라는 뜻의 프린켑스라고 부르며 옛 관직과 원로원을 그대로 두었고, 군대와 국고를 쥐고 다스렸습니다. 겉으로는 공화정의 모습을 남겨 두고 실제 힘은 자기 손에 둔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이 체제를 원수정이라고 부릅니다. 아우구스투스는 14년에 죽을 때까지 40년 넘게 다스렸고, 그동안 공화정이 돌아가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어졌습니다. 그와 후계자들 아래에서 국경 안쪽은 약 200년 동안 비교적 평화로웠고, 뒷날 사람들은 이를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라고 불렀습니다. 넓은 제국 안에서 큰 전쟁 없이 사람과 물건이 오갈 수 있던 시기였습니다.

좋은 황제, 나쁜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가문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는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를 배출했습니다. 클라우디우스 때인 43년에 브리타니아 정복이 시작되었고, 네로 때인 64년에는 로마 대화재가 났습니다. 네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69년에는 네 사람이 차례로 황제 자리를 주장했고, 베스파시아누스가 이겼습니다. 네 사람이 황제 자리를 다툰 것입니다. 그는 72년에 콜로세움을 짓기 시작했고, 아들 티투스가 80년에 완공했습니다. 아버지가 시작한 공사를 아들이 마무리한 것입니다. 티투스가 즉위한 79년에는 베수비오 화산이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묻어 버렸습니다. 2세기에는 유능한 황제들이 양자를 들여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핏줄보다 능력을 보고 후계자를 고른 것입니다. 에스파냐 출신의 트라야누스는 지금의 루마니아 일대인 다키아를 정복하고 메소포타미아까지 밀고 들어갔고, 그가 죽은 117년에 제국은 역사상 가장 넓었습니다. 뒤를 이은 하드리아누스는 동쪽에서 새로 얻은 땅을 포기하고 대신 국경을 단단히 했습니다. 땅을 더 넓히기보다 지키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지금도 걸을 수 있는 국경

하드리아누스는 122년 브리타니아를 찾았고, 잉글리시 헤리티지에 따르면 방벽 공사는 아마 그해 시작되어 적어도 6년이 걸렸습니다. 브리타니아 북쪽을 가로지르는 긴 성벽입니다. 방벽은 타인강 가의 월센드에서 보네스온솔웨이까지 73마일(80로마마일)을 뻗었습니다. 완성된 방어 체계에는 요새 16곳, 대략 1로마마일마다 하나씩 둔 마일성 80곳, 망루 156곳이 있었고, 앞에는 도랑을, 뒤에는 「발룸」이라는 흙둑을 두었습니다. 벽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된 방어 시설이었습니다. 가장 높은 곳은 약 4.6미터였습니다. 방벽은 침략을 막는 장벽이라기보다 국경을 오가는 사람과 물자를 통제하는 장치에 가까웠습니다. 병사들은 대부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의 속주에서 모집한 보조군이었습니다. 제국 곳곳에서 온 병사들이 브리타니아 북쪽 끝을 지킨 것입니다.

배경방벽 가까이의 빈돌란다 요새에서는 물에 잠긴 땅 속에 남아 있던 얇은 나무 서판이 몇백 장이나 나왔습니다. 물기 많은 땅이 나무를 썩지 않게 지켜 준 것입니다. 지금 대영박물관에 있는 한 장은 100년 무렵의 생일 초대장입니다. 다른 요새 지휘관의 아내 클라우디아 세베라가 친구 술피키아 레피디나를 자기 생일잔치에 부르는 편지입니다. 편지 대부분은 서기가 썼지만, 끝에 클라우디아가 직접 몇 줄을 덧붙였습니다. 레피디나를 자매라고 부르며 기다리겠다고 썼습니다. 대영박물관은 이 편지를 여성이 쓴 라틴어 글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의 하나로 꼽습니다. 아주 오래전 한 여성의 손글씨가 오늘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위기, 그리고 새로운 제국

212년 카라칼라 황제는 제국 안의 모든 자유민 남성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로마 시민이라는 자격이 제국 전체로 넓어진 것입니다. 그 뒤 얼마 안 가 제국은 235년부터 284년까지 반세기에 걸친 위기에 빠졌습니다. 전염병과 물가 폭등, 외적의 침입이 이어졌고, 오래 버티지 못한 황제가 잇따랐는데 대부분은 자기 병사 손에 죽은 장군이었습니다. 황제 자리가 그만큼 위태로웠던 것입니다. 284년에 황제가 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일을 나누어 질서를 되찾았습니다. 293년부터는 정황제 두 명과 부황제 두 명, 모두 네 명이 제국을 나눠 다스렸습니다. 한 사람이 다스리기에는 제국이 너무 넓었던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제국을 다시 하나로 묶었고, 312년 그리스도교의 표지를 앞세워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이겼으며, 313년 공동 황제와 함께 그리스도교인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인이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30년에는 비잔티온 자리에 새 수도를 봉헌했습니다.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폴리스입니다. 서쪽은 라틴어, 동쪽은 그리스어를 썼고, 이 차이가 앞날을 갈랐습니다. 제국의 서쪽과 동쪽은 말부터 서로 달랐던 것입니다.

  •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가 됨
  • 14년: 아우구스투스 죽음
  • 43년: 브리타니아 정복 시작
  • 79년: 베수비오 화산, 폼페이를 묻음
  • 117년: 제국 최대 영토, 트라야누스 죽음
  • 122년: 하드리아누스 방벽 착공
  • 212년: 모든 자유민 남성에게 시민권
  • 293년: 네 황제의 분할 통치
  • 330년: 콘스탄티노폴리스 봉헌
아우구스투스첫 황제, 기원전 27년~14년
프린켑스「제1시민」, 황제의 겸손한 칭호
팍스 로마나제국 안의 약 200년 동안의 비교적 평화
트라야누스제국이 가장 넓었던 117년의 황제
마일성하드리아누스 방벽에 약 1로마마일마다 둔 작은 요새
빈돌란다 서판하드리아누스 방벽 근처 요새에서 나온 나무 편지
디오클레티아누스293년 네 황제 체제를 만든 황제
콘스탄티누스그리스도교를 인정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세운 황제
  1. 「아우구스투스」의 뜻은?
    • 존엄한 자
    • 정복자
    • 왕
  2. 아우구스투스가 프린켑스라는 칭호를 쓴 까닭은?
    • 왕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 원로원이 집정관으로 뽑아서
    • 사제였기 때문에
  3. 제국이 가장 넓었을 때의 황제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네로
  4. 하드리아누스 방벽의 주된 역할은?
    • 국경을 오가는 이동을 통제
    • 물을 나름
    • 경주로 표시
  5. 빈돌란다 생일 초대장이 특별한 까닭은?
    • 여성이 직접 쓴 이른 시기의 라틴어 글
    • 가장 오래된 로마 동전
    • 금판에 쓴 글
  6. 카라칼라가 212년에 한 일은?
    • 모든 자유민 남성에게 시민권을 줌
    • 수도를 옮김
    • 스코틀랜드에 방벽을 쌓음
  7.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어느 도시 자리에 세웠나요?
    • 비잔티온
    • 안티오키아
    • 카르타고
  8.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27년부터 14년까지 다스렸습니다. 0년은 없습니다. 몇 년일까요?
  9. 하드리아누스 방벽은 73마일입니다. 1마일은 1.609 km입니다. 약 몇 km일까요? (반올림해 정수)
  10. 방벽에는 마일성 80곳과 망루 156곳이 있었습니다. 모두 몇 곳일까요?
  11. 오래된 것부터 순서대로 놓으세요.
출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하일브룬 연표 「The Roman Empire (27 B.C. to 393 A.D.)」; 잉글리시 헤리티지 「History of Hadrian’s Wall」, 「Hadrian’s Wall facts and FAQs」(프랜시스 매킨토시 박사 감수); 대영박물관 빈돌란다 서판 291번(생일 초대장); 안토니누스 칙령(기센 파피루스 40번); MIT 재료공학과 2025년 폼페이 연구(79년).
이 과정의 출처 (13)
  • The Met Heilbrunn Timeline essays "The Roman Republic" and "The Roman Empire (27 B.C. to 393 A.D.)" (metmuseum.org/essays)
  • British Museum collection records (Vindolanda birthday invitation, ostraka, Ilam pan)
  • Britannica: "The reforms of Cleisthenes", "Cleisthenes of Athens", "Greco-Persian Wars", "Delian League"
  • Hellenic Ministry of Culture exhibition "2500 years: The Battle of Marathon" (2500years.culture.gov.gr)
  • English Heritage: "History of Hadrian's Wall" and "Hadrian's Wall facts and FAQs" (english-heritage.org.uk)
  • MIT News 2023 "Riddle solved: Why was Roman concrete so durable?" and Seymour, Masic et al., Science Advances 2023 (doi 10.1126/sciadv.add1602)
  • MIT DMSE 2025 on the Pompeii building site
  • University of Chicago LacusCurtius: "The Life and Works of Frontinus" and Encyclopaedia Romana "Frontinus and the Quinaria" (penelope.uchicago.edu)
  • Brown University Joukowsky Institute course notes "Delian League"
  • Lumen Learning / SUNY world history "Odoacer and the Fall of Rome"
  • Livius.org "Royal Road"
  • EBSCO Research Starters "Legislation of Solon". Map coastlines: Natural Earth 1:110m (public domain)
  • routes are hand-placed approximations.

확인한 날: 2026-10-17